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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학습실의 문을 열었다. 후끈하고 덥덥했다. 익숙한 공기였다. 라지에이터와 빨래가 함께 만들어 내는 그들만의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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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학생시절 수도원엔 건조기나 가습기가 없었다. 겨울날 우리 작은 방이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은 나와 동기의 빨래였다. 겨울이 되면 방 문과 두 개의 침대 사이는 자주 빨래와 건조대의 차지였다. 그리고 건조대를 아주 조금 접어 올리면 라지에이터를 둘 곳이 생긴다. 밤이 되면 방은 후끈하고 덥덥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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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 넘는 양성기를 보내고 나는 사제가 되었다. 양성장이 되어 양성기 학생 수사님들을 동반하며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오늘 같은 겨울 날 그들 학습실 문을 열 때면, 나도 모르게 싱긋 미소가 지어진다. 문지방을 넘어오는 이후끈하고 덥덥한 공기 만큼, 지금 저들이 겪고 있을 삶의 어려움도 내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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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서 다시 몸과 마음을 겸손히 추스린다. 지금 내 삶이 그들이 보는 그들의 미래니까. 후끈하고 덥덥한 이 방의 공기처럼, 하찮은 수도자의 모습도 나를 통해 그들에게 익숙해지길. 기도하고 다시 내 방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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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놀이터에서 낙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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