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낙서하기

[나도 모르게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3. 12. 7. 13:39

 

 



수도원 학습실의 문을 열었다. 후끈하고 덥덥했다. 익숙한 공기였다. 라지에이터와 빨래가 함께 만들어 내는 그들만의 분위기다.

옛날 학생시절 수도원엔 건조기나 가습기가 없었다. 겨울날 우리 작은 방이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은 나와 동기의 빨래였다. 겨울이 되면 방 문과 두 개의 침대 사이는 자주 빨래와 건조대의 차지였다. 그리고 건조대를 아주 조금 접어 올리면 라지에이터를 둘 곳이 생긴다. 밤이 되면 방은 후끈하고 덥덥해 진다.

십 년이 넘는 양성기를 보내고 나는 사제가 되었다. 양성장이 되어 양성기 학생 수사님들을 동반하며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오늘 같은 겨울 날 그들 학습실 문을 열 때면, 나도 모르게 싱긋 미소가 지어진다. 문지방을 넘어오는 이후끈하고 덥덥한 공기 만큼, 지금 저들이 겪고 있을 삶의 어려움도 내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 방에서 다시 몸과 마음을 겸손히 추스린다. 지금 내 삶이 그들이 보는 그들의 미래니까. 후끈하고 덥덥한 이 방의 공기처럼, 하찮은 수도자의 모습도 나를 통해 그들에게 익숙해지길. 기도하고 다시 내 방문을 연다.

2023.12.04. 놀이터에서 낙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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