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때 부산으로 이사 온 후 초등학교 시절 처음 기억에 남아 있는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갔다 와서 어느새 텅 비어있는 방을 봤을 때, 제 마음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찾아왔었습니다. 어린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아마도 조금은 허탈하고 또 조금은 공허한 그런 상실이나 이별의 아픔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커먼 공간 안에서 귀신이 손을 내뻗을까 기대어 앉아 있으면서도 문득문득 겁내곤 했던 장롱이 있던 자리엔 빛을 못 봐 창백해진 장판의 맨얼굴이 있을 뿐이었고, 그 위로 언제부터 있었을지 모를 녹슨 동전 몇 개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안 쓴 지 한 참되었지만 할머니가 발을 밟으시며 돌리곤 하셨던 미싱이 있던 자리에는 다리 끝에 눌려 푹 꺼진 자국들도 쓸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