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마태복음

20260804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묵상강론 마태 15,1-2. 10-14 [ 그 때는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6. 8. 7. 15:07

20260804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묵상강론 마태 15,1-2. 10-14 [ 그 때는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온 것들이 여전히 지금도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 한 번씩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가끔 느낍니다.

 

어떤 것들은 어느 시기에는 중요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어느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중요했으나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과는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나에게는 중요했으나 지금의 나에게는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된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 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속한 단체, 내가 처한 상황, 그리고 나 자신의 상태에 따라, 유연하고 분별력 있게 중요한 것들을 계속해서 식별해 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살아있는 신앙의 열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별의 과정에서 매번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옳은 선택을 하는 것 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포기 또는 내려 놓음입니다. 선택은 곧 포기 또는 내려놓음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열심히 살아 왔던 사람일 수록 이것은 더 어려운 도전입니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익숙하게 해왔던 것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전통을 열심히 지키고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수님과 함께 찾아온 이런 성찰과 식별의 기회 앞에서 쉽게 자신을 열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던 것만큼 자신을 다시 점검하고 식별하고 멈추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겁니다. 

 

저는 올해 들어 '아무리 아파도 정말 죽을 정도가 아니면 아침기도에 빠지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조금 다시 점검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저에게 매우 숭고한 각오입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무릎쓴 헌신적인 노력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을 애써 지켜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동안 제 안에 일어나는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을 계속해서 봐야 했습니다. 그것은 기도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나는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만, 아픈 자기 자신을 잘 돌보지 않는 무책임함, 피곤하고 아픈 몸으로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일으키는 갈등 같은 것들입니다. 숭고하고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동안,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제 안에서 사람을 더럽히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요즘더욱 잘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파도 정말 죽을 정도가 아니면 아침기도에 빠지지 않는다'라고 결심하며 스스로 숭고한 봉헌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저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자신이 더 나은 존재라고 자만하고, 못한다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온유로 대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저의 기도의 일부분이 엉뚱한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겁니다. 마음의 한 부분에 그런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는 채로 살아왔으니, 그야말로 눈먼이가 눈먼이를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던 거죠.

 

요즘은 '아무리 아파도 정말 죽을 정도가 아니면 아침기도에 빠지지 않는다'라는 결심은 지켜나가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못할 때의 자신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따뜻한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을 좀 더 잘 돌보고 그래서 그렇게 조금 더 충만한 상태의 나로 사람들을 조금더 예수성심의 온유한 마음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왔던 지난 저의 모습을 부끄러워 하거나 죄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그 노력은 그때의 저로서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을 통해 하느님께서 맺게 해주신 좋은 열매들도 많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저는 조금 더 눈이 덜 먼이가 되기 위한 이런 노력들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복음을 묵상하면서 함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온 것들이 여전히 지금도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 한 번 묵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혹시 그런 것들로 나는 눈 먼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의 내가 중요하게 여기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묵상하는 하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