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9 연중 19주일 묵상강론 마태 14,22- 33
[ 우리의 여정이 마무리 되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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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서 하느님에 대한 어떤 신앙체험을 할 때나, 아 예수님께서 바로 여기 계시는 구나 라고 느끼는 때나, 아 정말 성령께서 나를 돌보시고 계시는 구나 라고 느낄 때는 어떤 방식이였습니까? 여러 분들께서 나누어 주신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참 다양하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만나고 계시는 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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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만나는 두 가지 대표적인 방식에 대해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방식은 다소 반대가 되는 대비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대비를 묵상할 때 우리가 마음에 새겨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걷는 여정이 어떻게 마무리되는 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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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소에 대한 고민을 12년 동안 했습니다. 고민하는 매 순간이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선택하기 전 즈음 하느님께서 때가 되었다 싶으셨는지 누군가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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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선택을 하려고 할 때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네 마음이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느 것에도 매여 있지 않을 때, 고요함 속에 머무른 채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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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수도회 입회를 결정한 장소와 때는, 주일 미사 후 성당 청년회 회합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따로 다시 조용히 들어가 안았던 감실 앞이었습니다. 방금까지도 왁자지컬 거리던 그러나 지금은 고요한 성전 안 희미한 감실의 불 빛 앞이었습니다. 바깥에서 떠들며 어디로 뒤풀이를 갈지 이야기하며 웃는 청년들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제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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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함께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노래하고 웃으며 함께 하는 동안에도 하느님과 함께 했었지만, 잠시 떨어져 세상과 또 나 자신의 마음으로 부터 조금 떨어져 머물 때 더 깊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초대해주셨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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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생활에도 신혼생활처럼 하니문 기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형제들이 천사같고, 수도원의 모든 일들이 성스럽고, 형제들이 하는 모든 음식이 맛있습니다. 나무라는 사람도 없지만 누가 조금 섭섭한 소리를 해도 그렇게 달콤하고 감사할 수 없습니다. 막 자신을 성찰하고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마음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매일 함께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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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6개월 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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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저 자신과 주변의 현실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찬란한 봄 같은 생활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천사같던 형제들이 이기적이고 고집을 부리는 마구니로 보이기 시작했고, 성스러워 보이던 수도원의 모든 일들이 너무 지겹고 힘들어지고, 맛있기만 하던 형제들의 음식들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라기 시작하는 형제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누가 조금 섭섭한 소리를 하면 그렇게 화가나고 그 형제가 미워질 수가 없었습니다. 사회 생활도 했고 수도원이 그렇게 천사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고 왔음에도 정말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몇 번을 되뇌였는지 모릅니다. 물론 저 자신이 먼저 그런 천사가 아니고, 사회에서나 똑똑하고 잘 나가던 겸손하지 못하고 남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도 강제로 생생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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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런 생활 중에 하느님께서 내 삶을 이끌고 계시는 것이 맞나 라고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한 번 그런 의문이 생기자 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많이 무너져 내렸던 것 같습니다. 기대가 없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제 안에는 그래도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 정도는 되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고, 그 기대가 여지 없이 무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실망감 속에 내가 내렸던 입회라는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던지, 하느님께서 그 선택의 삶을 이끌고 계신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뜨거운 여름이라는 시간을 이기는 유일한 것은 결국 이어서 찾아오는 가을이라는 시간인 것처럼, 인간적인 시련의 시간을 이기는 것도 결국 이어서 찾아오는 하느님 위로의 시간이라는 것을 저는 계속되는 수도생활을 통해 체험해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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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요함 속에 하느님을 만났고,또 열정과 환희 속에 하느님을 만났다가 실망과 의심 속에 하느님을 잊었고, 다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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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독서에서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있는 동굴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엘리야는 강한 바람도 아니고, 지진도 아니고, 불도 아닌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간 위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하느님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도 떠올려봅시다. 두려움 속에 떨다 베드로는 환회와 열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만 곧 두려움과 의심으로 예수님께 가는 길에서 미끄러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때 중요한 장면에 다다릅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십니다. 그리고 배에 오르십니다. 바람은 그칩니다. 베드로는 다시 예수님을 가까이서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꾸짖으심은 위로로 베드로에게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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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묵상하시면서 여러분의 신앙 여정도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나왔던 신앙 여정 처럼 고요함 속에 예수님을 만나고, 열정과 환희 속에 예수님을 만나다가, 두려움과 의심 속에 예수님께 가는 길에서 미끄러졌다가, 다시 손을 내미시는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오르는 일. 이런 여정은 우리 일생을 통해 일어나기도 하고, 올 한 해 동안 일어나기고 하며, 바로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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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고 고요함 속에 하느님을 만나고, 하루를 정신없이 살다가, 저녁이 되어 침대에 오를 때 우리는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며 내미시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침대에 오릅니다. 그리고 바람이 잦아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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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우리는 이런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를 선물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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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힘겨운 여정 예수님의 손 잡고 침대에 잘 오르시고, 내일 아침 고요한 소리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며 새로운 여정 용기있게 시작하실 수 있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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