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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2 부활 5주 화요일 묵상 - 너에게 평화와 나에게 평화는 같은가?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5. 12. 16:14

 

한국어를 쓰는 사람끼리도 가끔 같은 단어를 다른 뜻으로 여기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것 때문에 곤란한 일을 겪으신 적은 없으신지요? 저는 중요한 순간 각자가 다른 뜻으로 알고있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곤란해지는 일이 간혹 겪곤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일을 할 때 요령이 있어야지!"하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우와, 수사님 요령있게 일을 참 잘하시네요."

"아니, 요령있게 일을 하다니요, 제가 얼마나 성실히 열심히 했는데 그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한 수사님이 맵시있고 깔끔하게 일을 빨리 처리하신 것을 보고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그 말을 들은 수사님은 갑자기 언짢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저는 무척 황당했습니다. 좋은 뜻으로 이야기를 한 건데 왜 이렇게 화를 내시지? 하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 저는 그 수사님의 반응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사님에게 '요령'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 부정적인 것이었던 겁니다. '요령이 있다'는 표현은 그 수사님에게 일솜씨가 있다거나 센스가 있다는 것은 전혀 의미하지 않고 언제나 '꾀를 부린다, 잔머리를 굴린다'같은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이 말에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심지어는 '서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이 수사님 집안에서는 그 단어를 다 부정적인 의미로 쓰고 계시는 건가?' 등등 여러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다 잡고 한사람 한사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이후 저에게 이 경험은 다양성과 수용성에 대한 큰 묵상거리가 됩니다.

 

이런 일은 예수님의 시대에도 일어 났던 듯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 당시 사용하던 통상적인 인사말대로 예수님은 '평화'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그 의미는 그 당시 사람들이 잘 알고 있던 것과 사뭇 달랐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평화라는 말의 개념은, 현대 서구사회의 평화의 개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팍스 로마나'와 '에이레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식 평화로서 힘의 철학을 의미하며 전쟁, 억압, 수탈 등의 방식으로 더 이상 전쟁이 발생할 수 없는 철저한 승리의 상태를 쟁취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에리레네'는 히브리 말로 샬롬인데, 이는 전쟁상태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난 평온한 상태, 상호간의 계약조건이 모두 이행되어 주어지는 완전한 관계를 의미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바라던 평화는 로마의 억압에서 벗어나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상태가 되거나, 로마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임금을 물리치고 완전한 예루살렘의 승리를 이룬 상태의 평화를 생각하고 또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갖고 있던 평화의 개념은 그것과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단순하고 평범한 별 뜻 없는 인사말도 아니었고, 그 당시 사람들이 기대하던 평화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데에서 오는 평화였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로 우리가 따를 때 생기는 평화였습니다. 이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어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에서 오는 평화!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는 것에서 오는 평화 !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도, 또 영적 성숙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일상의 많은 어려움과 전쟁과 같은 영적수련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참평화는,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것에서 오거나, 그것을 지혜롭게 다룰 줄 알도록 성숙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 평화는 그 어려움과 고난 안에서 끊임없이 하느님과의 사랑 안에 머물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일을 식별하여 실천하는 것에서 오는 것임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잘 알려줍니다.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셨듯이요.

 

부활 5주 화요일 독서 및 복음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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