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602 연중 9주 화요일 묵상 - 평범한 유혹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6. 2. 14:03

 

 

 

저희 수도원은 입회를 할 때 핸드폰을 끊고 들어옵니다. 아직도 입회하러 가는 길에 서울역 앞 핸드폰 가게에 들러 핸드폰을 해지하고는 나오면서 "아, 이제 들어가는구나." 하고 같이 갔던 동생들과 깔깔대었던 기억이 선합니다.

작년 부제품을 받으면서 근 십년 만에 제 명의의 폰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제 사도직에 도움이 될만한 모델과 가장 싼 가게를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찾아 정하고 가서 계약을 했어요. 새 폰 박스를 뜯을 때 느껴지는 설레임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폰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건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입회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십년 전 즈음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에게 노선을 물어보거나 길거리에서 길을 물어보면 대부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강화도 신학원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도착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전화기를 빌리는 일도 어렵지 않았고, 정류장에는 내려서 데리러 나오라고 전화할 수 있는 공중전화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는 그런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선이나 길을 물으려 하면 이상한 눈으로 돌아보며 '폰으로 확인해 보세요' 라는 말이 돌아오기 일쑤고, 폰을 좀 빌려 달라고 하면 경계하는 눈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 정류장 옆에 공중전화기는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저도 본인인증을 해서 비밀번호를 잊지 못해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메일이나, 쇼핑몰 가입이나, 은행업무 등을 할 수 있게 되고,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노선표를 갖고 다니며 손가락으로 가장 빠른 길을 찾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지도상에서 가깝다고 가는 길이 짧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즐겨 찾아 물어보던 역무원들도 이젠 역사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된 지금의 시대에 폰과 함께 저에게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죠.

 

그런데,

큰 맘을 먹고 새로 출시된 모델로 구입했던 그 반짝거리는 새 폰이 글세 고작 두어달이 지난 어느날 고장이 나게 된 겁니다. 화면 군데군데 터치를 인식하지 않는 겁니다. 저는 인터넷과 핸드폰 동호회 홈페이지를 폭풍검색했으나 저와 유사한 증상이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핸드폰 회사에 매우 실망했고, 크게 낙담한 끝에 찾아간 서비스 센터에서 더 큰 막막함에 서게 됩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이 모델로 이런 증상은 아직 보고된 것은 없고요, 말씀하신 것으로는 아마 보드 쪽 문제인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수리비나 여러 상황을 봤을 때 새 모델로 구입하시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뭐라고요? 구입한 지 두달도 안되는데 무상으로 수리가 안되나요?"

"네, 만약 보드 쪽 문제라면 사용자 측에서부담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전문 엔지니어가 폰을 검사하는 동안 센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저는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꼴랑 두달 쓰고 또 새 폰을 사야 한다는 상황도 힘들었지만, 그 당시 공동체에서의 일이나 공부나 관계 때문에 정말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터인데, 폰 마저 문제가 되고 만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이것 밖에 안되는 존재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오는 여러 감정들이 교차되었습니다.

 

그런데, 검사를 마치고 나온 직원이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고객님, 다행히 보드 문제는 아니었고 다른 작은 부품의 문제였는데 무상으로 교체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동호회에는 이런 증상에 대한 이야기가 없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그러자 직원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 세계적으로 이 모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경우가 십만 명에 두 세명 정도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이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야 했습니다.

"아.. 그 십만 명에 꼴랑 두 세명 걸리는 불량에 내가 결렸단 말이야? 에잇!" 

 

 

그런데,

그 순간 제 마음 깊은 곳에 짜릿한 희열과 함께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  내가 그 십만 명중 두 세명 안에 든거란 말야?"

 

 

 강화도로 돌아오는 차에서 저는 속으로 혼자 웃고 말았습니다.

'아... 정말 요즘 내 자존감이 바닥이었구나...'

 

지금까지도 그 순간을 자주 묵상하게 됩니다. 특별히 일상 안에서 평범하게 다가오는 유혹을 식별하게 될 때는. 정신 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에 또 매어있게 되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때면 너무나 진부하게도 저는 변함없이, 받지 못하는 주변의 인정과 얻지 못하고 있는 나의 권력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기대충족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데나리온 한 닢에 깃든 세상의 기준은 세상에 줘 버리고,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기준을 따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 본 이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은 그냥 감탄하고 말 일이지만,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에게 이 말은 마치 동전처럼 평범하게 다가오는 일상의 유혹에 잘 깨어 있으라는 따뜻한 위로와 경계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십만 명 중 두 세명이 걸리는 불량품을 받고 겨우 자존감이 회복될 만큼, 저는 약한 존재라는 걸 항상 잊지않고 성찰하려고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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