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731 연중 17주 금요일 - 어떻게 저렇게 잘 할수 있지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8. 1. 02:59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고향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고향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장면을 만납니다.

부부생활이건 수도생활이건 아니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건,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아주 잘하거나 그런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아직도 가끔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나는 절대로 저렇게는 못되겠지' 하며 암담해 지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고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나 자괴감 같은 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많이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을 볼때, 특히 저의 가까이의 누군가에게서 볼 때, 여전히 순간적으로 본능적으로 드는 이 생각은 쉽게 없앨 수 없는 듯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잘 할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그 생각에 따른 여러 감정들이 드드득 흙을 뿌리며 끌려 오는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옵니다.

 

오히려 조금 성장했다고 느끼며 자신하고 살다보면, 짧게 올라왔다 숨어버리는 이 생각이나 감정들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못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실제보다 더 성장했다는 착각에 계속 살게 됩니다. 

 

어떻게 저렇게 잘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대상이 누구나가 아는 유명한 분들인 경우라면, 제 마음에는 그분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동시에 초라해지는 자신에게 느끼는 실망의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사뭇 다른 감정들이 올라옵니다. 그때는 존경 대신 평가절하하는 마음이, 자신에 대한 실망감 대신 상대방을 못마땅해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 때의 저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과 같아보입니다. 이런 마음은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죽는 날 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잘  있지?” 라는 생각과 그에 따른 적절치 않은 감정이 들었을 때, 그리고 다행히 늦지 않게 알아챘다면,  오늘 복음은 아주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 대신 "어떻게 저렇게 되었을까?" 를 생각해보는 노력을 한다면요.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저렇게 잘 할수 있지' 에만 관심이 있고, ‘어떻게 저렇게 되었는가?’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에게 느끼는 '평가절하하는 마음'과 '못마땅해 하는 마음' 때문에, 예수님이 저렇게 되기까지 겪어왔을 과정과 노력들을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인간이셨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님께서 겪어왔을 과정들 말입니다. 성장해가면서 성소를 발견하고 그 성소를 따르려는 결정을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뇌와 번민의 시간들 그리고 40일간의 유혹의 광야를 거친 그 노력도 마을 사람들은 알아주고자 하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런 것들을 묵상하며 지내보려고 합니다.

"누군가 특별히 내 주변의 사람들을에게 내가 평가절하 하려는 마음이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들을 느끼지는 않는가"

"그들의 좋은 점들을 위해 그들이 겪어왔을 어려움과 노력들을 나는 잘 알아주고 있는가"

 

이것은 남을 위한 일이 아니라 결국 저를 위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과 노력을 볼 줄 모르면, 자기 자신의 어려움과 노력도 보아줄 줄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타인을 위한 노력은 결국 자신을 위한 유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웃에게나 자신에게 모두 유익한 하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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