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년 07월 24일 연중 16주 금요일묵상 - 좋은 씨를 뿌릴 때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7. 25. 20:23

20200724 연중 16주 금요일묵상 

- 좋은 씨를 뿌릴 때 -

 

 

 

오늘 복음은 대화에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나 다른 이들의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제가 사목자로서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듣는 것에 관해서 생각할 때면 제가 하나의 지표로 삼고 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일때문에 개인 시간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던 저는, 몇 년이 지나서 어떻게든 틈을 내어 대학시절부터 취미로 하던 중국무술 태극권 무관에 틈틈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태극권 사부님의 사부님, 그러니까 태사부님인 분은 그 당시 중국 3대 체육대학 중 하나인 심양 체육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우리는 저의 휴가기간에 맞추어 사부님과 무관의 사형사제들과 함께 중국 심양체육대학교로 무술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심양 지역의 관광지도 둘러보고, 무술연수도 받고, 또 지역의 무술가들과 교류도 했습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중국사람들의 호방함과 전통 무술에 대한 사랑을 느꼈고, 특히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모두가 함께 불렀는데, 말로만 듣던 그 노래의 당시 중국에서의 인기를 실감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머물던 중 어느 밤에, 지금도 저에게 대화에 대한 삶의 지표가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에 여러 명이 함께 갔지만, 주로 사부님과 여자 사범님 한 분 그리고 다른 수련생 한분과 저, 이렇게 네 명이 매일 밤 사부님의 호텔방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곤했습니다. 그날 밤의 주제도 역시 무술이었습니다. 사부님이야 당연히 전문가이시고, 저와 다른 수련생은 취미로 하는 거라 실력이 대단치는 않았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주제였기 때문에 우리 이야기는 새벽이 되도록 끝이 없었습니다. 네 명 중 유일하게 여성이셨던 사범님은 맞장구를 쳐주면서 주로 들으셨고, 우리들은 모두 신이나서 쉴새 없이 대화하며 정말 재미있는 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사범님이 저에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세 분이서 재미있게 이야기 하시는데, 들으면서 저는 좀 이상해서 웃기기도 했어요. 세 명이서 몇시간을 함께 이야기 하시는데, 대화 하는게 아니라 각자 자기 이야기만 돌아가면서 하는 거예요.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하면, 다음 사람이 또 자기 이야기를하고, 이렇게 몇 시간을 계속 하시면서도 되게 재미있어 하시는게 신기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어제 신나게 이야기 하는 중에도 마음 한구석에서 느껴졌던 이상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뚜렷이 보였습니다. '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는 답답함 이었습니다.'


사실 그날 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동안 내내 제 머리 속에는 계속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음? 아니 내가 말한 건 이런 이야긴데' '음? 나는 지금 이 얘기를 하는데 왜 다른 이야기를 하지?' '저건 잘못 알고 있는건데... 내가 제대로 알려줘야지.' '다음에 내가 말할 차례에는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해야지, 그래야 내 말을 잘 이해할꺼야.'


저만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 세명 다그랬던 겁니다. 우린 신나게 놀며 대화했다고 기억하지만, 실은 우린 그냥 차례대로 자기 이야기를 늘어 놓은 것이었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제게 말씀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날 밤의 기억과 함께 '제가 사목자로서 또 수도자로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때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하는지' 묵상하게도 합니다.  

듣는 나의 마음이 좋은 땅이 되도록 마음을 써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무언가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뿌린 씨를 상대방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을 얼른 알아채고 내려 놓아야 함을 보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리고 싶어도 그 때 상대방의 마음이 돌밭이나 가시덤불 같다면, 내가 씨를 뿌렸다고 열매를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건 어쩌면 상대방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예수님도 우리에게 씨를 뿌리셨을 뿐 열매를 맺으라고 강요하지 않으셨고 오늘까지도 우리를 기다려 주고 계십니다. 

언제나 좋은 땅이신 그리고 인내롭게 저의 열매를 기다리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당신을 닮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땅이 될 수 있는 마음의 힘도 청하고, 좋은 씨를 뿌린다는 이유로 함부로 다른 이에게 열매를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은 인내로운 사목자가 될 수있는 지혜도 청합니다. 

여러분의 하루에 좋은 대화가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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