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723 연중 16주 목요일묵상 - 다시 죄 짓지 않을 자신이 없을 때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7. 23. 16:31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수도원에 입회하고서 년은 가지 반대되는 마음이 제게 있었습니다.

하나는 수도생활을 하는 동안 빨리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기억이 없는 같아서, 이런 체험을 하고 나면 믿음이 깊어지고 성소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마음 하나는 그것과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가능한 가능한 아주 아누 늦게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만나고 싶기는 한데, 일단 만나면 인생이 아주 피곤해질 같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하느님을 만나고 나면, 하고 싶은데로 못할 같고, 하더라도 눈치보이고 괜히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같아서였습니다.

  두가지 반대되는 마음이 왔다갔다 하면서 저를 때때로 괴롭히곤 했습니다.

어제 우리는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을 지냈습니다. 전에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가 그린 낙서 그림이 있는데, 그림에 안에서 엎으려 우는 마리아와 그녀를 내려다 보시는 예수님의 대화에는 당시의 저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주님, 고맙습니다. 주님 그런데 저는 다시 짓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하느님께 죄를 용서 받는 체험을 하고 나면아이고 이제 죄를 지을게 뻔한데 우짜노?’라고 혼자 생각하며 괴로워하곤 합니다. 고해성사 볼때도 마찬가지죠.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것은 아닌 합니다. 요즘 1독서에는 대부분 하느님께 용서 받고도 배반하고 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외치는 예언자들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이렇게 자꾸만 다시 죄를 짓고 무너지는 나약한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함께 살아야 할까요?

 

질문에 대한 묵상 중에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들이 저에게, ‘이런 일은 사람인 이상 어쩔 없는 것이다라는 위로를  주셨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씀이 나옵니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생각해 보면 오랜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수많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보고자 듣고자 했던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들었던 제자들 마저도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앞에서 두려워 도망가고 배신하고 말았으니, 예수님이 살아있는 동안 만나지 못했던 제가 제자들 보다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을 같습니다. 

 

그러자 오늘 복음의사실 가진 자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말씀이 믿음이 약한 저에게 희망을 주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자꾸 죄를 짓고 넘어지더라도, 나에게 조금의 믿음이라도 있으면, 많은 믿음을 받아 넉넉해 것이라는 말씀으로 제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수도생활을 하며 그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다시 죄를 짓게 되는 나약한 때문에 여전히 괴롭긴 하지만, 지금은 더는 예전처럼 하느님 만나는 체험을 저는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무덤 앞에서 괴로워 하던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죄를 짓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것을 슬퍼하는 안의 조그만 믿음이, 언제나 슬퍼하는 저의 뒤에서 저를 불러 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고 음성 너머에 계신 예수님을 보게 하는 체험들을 조금씩 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저의 모습에 있는 작은 믿음이야말로 하늘나라의 신비를 찾는 열쇠라는 것을 저는 이제 믿고 삽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안에 있는 작은 믿음의 힘을 체험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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