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807 연중19주 금요일 묵상 - 나의 십자가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8. 8. 20:12

 

 

요 몇 주 사이 제가 존경하는 분들과 만나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나 세상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야기들 중에, 다른 자리에서 몇 분들이 마치 약속이나 하신 듯 제게 해주신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놓아야 된다. 너무 열심히 할려고 하지마라. 힘을 빼야한다. 자꾸 그런 연습을 해야 한다."

분명 단순하고 쉬운 말인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어렵게 들려 한참을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의 나이가 저의 처지에 이르게 되는 이들에게 으례히 필요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해주신 것인지, 저에게 지금 그런 것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인지 알순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몇 분께서 공통적으로 해주신 말씀은 이후 제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묵상 중이나 생활 중에 특별히 지금 내가 무얼 잡고 있는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놓아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 내가 놓아선 안되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내가 놓을 수 있는 것인가.

 


 

밤 11시는 저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입니다.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회사 기숙사의 룸메이트와 함께 룸페이트의 차로 출퇴근 했었습니다. 부서는 달랐지만 함께 일하는 분야가 많았기 때문에 자주 함께 퇴근하곤 했었습니다. 자정이 넘어 퇴근하는 일이 잦았던 우리는 퇴근 후에 각자의 책상에 등을 맞대고 앉아 각자 하는 일과 관련된 공부를 하다 잠들곤 했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미래를 위해 해야한다고 생각한 공부였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노력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 시절의 어느 날,  퇴근길 차 안에서 둘이 나누었던 대화가, 그 순간의 저의 감정과 함께 아직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 오늘도 또 일찍 퇴근하네..."

"응, 새벽 일찍."

"와.. 진짜 더도 말고 매일 11시에라도 퇴근이 보장된다면 좋겠다."

"맞제, 그럼 우리 뭐든지 할 수 있을텐데..."

 

그날 이후 그리고 서품을 받고 양성소를 떠나 비교적 자유로운 일정으로 사는 지금도 밤 11시는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고있습니다. 저는 이시간에 내가 무얼 하는 가로 저의 생활을 스스로 평가하곤 합니다. 그리고 또 가끔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합니다. '밖에서 힘들게 사는 친구들이나 다른 분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열심히 살고 있나'. 그래서 보통 저는 이 시간에 가능한 묵상을 하거나 묵상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만났던 분들은 저에게 그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못 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문제는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그것 하느라고 지금의 행복을 놓지고 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젊고 힘 있을 때 열심히 살고, 내려 놓는 것은 나중에 나이 들고 해도 되잖아요"

"늙으면 더 놓기 힘들어진다. 욕심이 많아져가꼬. 젊을 때 부터 연습안하면 나이들어서 흉해진다." 

 


 

그 후 성찰하면서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열심함 속에 섞여 있는 저의 욕심과 저의 기대와 저의 폐쇄성을.

어쩌면 11시라는 의미도 언젠가는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진정 자유롭고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조금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11시라는 기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11시에 의미있는 것을 해야 저는 의미있는 존재다"라는 기준을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버리라고 하신 나 자신은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는 나의 기준"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기 위해 져야 하는 저의 십자가는 다른 무엇이 아닌 "저 자신,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사랑과 인정 받음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저 자신"이구나 라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욕구는 살아서 다 버릴 수 없겠기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나의 십자가 일수 밖에 없다고 인정하게도 됩니다.

 

내가 버려야 할 것을 분리해 내는 방법 중에 의외로 단순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루려고 했던 것이 되지 않았을 때의 자기 모습에서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그 때 내가 무너지고, 내가 부끄럽고, 억울해 하며 남을 탓을 하고 있다면 그땐 신중히 나를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 크기만큼 나는 불필요한 욕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루려던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바뀐 것 처럼 느끼는 것 만큼 나는 쥐고 살고 있었던 겁니다. 의미없는 열심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겁니다.

 

연습 없이 되는 것은 잘 없습니다. 내려 놓고, 필요한 만큼 열심히 하고, 불필요한 힘을 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야 지금 내가 더 행복할 수 있고, 더 사람들을 행복으로 초대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연습은 힘들지만 분명히 곳곳에 행복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음을 체험하고 있으니 저는 믿고 넘어져도 또 일어나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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