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811 연중 19주 화요일묵상 - 내 속을 채우는 것은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8. 10. 21:47

 

 

 

신자 분들과 면담이나 상담을 하다 보면 예상 밖의 사실들을 만나게 되곤 합니다. 그 중 하나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하느님에게서나 신앙에게서 부담이나 두려움을 느끼며 지내신다는 겁니다.

 

저희 수도회 청년사목 수녀님과 함께 번역하며 준비하고 있는 피정 프로그램 '라이프 힐링 저니'에서는, 예수 성심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 중 하나로 바로 하느님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왜곡된 이미지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살다보면 어느새 안에서 스물스물 자꾸 드러나 우리를 괴롭히는 '재판관으로서의 하느님'의 이미지는 왜곡된 하느님의 대표적인 이미지이지요.

 


 

어릴 때 저에게는 한가지 버릇이 있었습니다.

 

보도블럭이나 벽돌로 된 길을 걸을 때 블럭들 사이의 선을 밟지 않고 걷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랜 기간동안 은근히 마음을 들여 지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미삼아 하는 일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선이라도 밟을라 치면 뭔가 재수없는 일이 일어날까봐 괜히 마음이 쓰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며 더이상 그렇게 하진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내가 괜히 정해놓고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스스로에게 주는 숙제를 만드는 습관같은 것은 계속되고 있는 듯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저의 생활의 영역에서요.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예비자 때도 그랬고 수도생활을 하는 지금도, 스스로 목표하고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때문에 스스로를 책할 뿐만 아니라 죄송한 마음이 들어 하느님과 더 멀어지는 일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 커서, 스스로를 책하거나 하느님께 죄송함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비탄과 탄식과 한숨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가혹한 이 세상에서는 착하게 살려는 사람일 수록 더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곡된 하느님의 이미지가 마음에서 살아날 때는, 자기도 모르게 하느님을 따른 다는 것이 이 순간 위로나 희망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를 책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고 또 하나의 칼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힘들어 하는 분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오늘 1독서에도 주님으로부터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을 따르려는 이들의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가득한 두루마리를 받습니다. 그 당시의 두루마리는 양피지였고 거기에는 한 면에만 글을 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에서 나오는 두루마리는 앞 뒤로 가득 적힌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의인들의 비탄과 탄식과 한숨을 품은 두루마리를 에제키엘은 받아 삼키고 그것으로 속을 채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제키엘 예언자는 그것이 꿀처럼 입에 달았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에제키엘 예언자의 스승이었던 예레미야 예언자도 같은 경험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다툼을 벌이고 어려움과 수모를 겪고 있던 예레미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예레 15,16)

 

신앙을,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다는 건 이처럼 '나 자신과 이웃의 비탄 탄식 한숨'도 '주님의 말씀'도 모두 내안에 들어 와서는 꿀같이 달고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가는 길입니다. 그것을 내 마음에 새기고 가는 법을 알아가는 길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를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끊임없는 잘못과 실수와 악의 선택 또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내모는 세상의 거칠음 속에 계속해서 길을 잃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얻는 것은 실망이나 절망이나 분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에게서 얻는 것은 기쁨이라고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항상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신앙이 또다른 사슬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내게 둘려진 사슬을 풀어내는 기쁨이 되는 신앙의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저도 오늘 그런 하루를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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