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아무렇지도 않게 맑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지붕을 들썩이며 천둥과 번개를 보내고는 마치 성난 것 처럼 비를 쏟아부었습니다. 근근이 우산을 펴쥐고 몸을 굽혀 수도원 식당으로 달려 갔었는데,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거짓말 처럼 개어 우산을 그냥 손에 쥐고 돌아왔습니다. 땅은 벌써 마르고 있었습니다.
몇 십년을 매일같이 보는 하늘인데도 참 요즘의 하늘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제 날씨는 종일 그랬습니다.
어제 본원에 방문한 수련장 신부님이 본원을 방문해, 비슷한 또래의 본원의 신부님들과 넷이서 함께 신나게 웃고 떠들며 놀았습니다. 신부님이 강화도로 돌아가는 참에 배웅하러 나가 계단을 내려가기 전 잠시 건물 밖 좁은 처마 아래 넷이 어깨를 맞대고 비를 피하며 서있었습니다.
제가 입회를 하고 몇 해 동안은 우리 네 명 모두 신학생 수도자였고, 선후배로 강화도의 신학원에서 함께 생활했었습니다. 아침 저녁 함께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고, 순서를 정해 봉고를 몰아 함께 신학교를 갔다오고, 신학원 일정을 따라 공부, 밭농사, 부서활동, 행사준비 등을 함께 했었습니다. 토요일이면 아침에는 대청소, 오후에는 족구나 축구를 같은 운동, 저녁에는 다같이 공동방에 모여 레크레이션을 하며 신나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학기마다 조를 정해 아침저녁으로 전례준비, 청소, 개밥닭밥주기, 분리수거, 식사 등의 소임을 돌아가며 했고, 또 별도로 학생대표, 시설부, 환경부, 재정부, 전례부, 의료부 등 부서활동도 각자가 속한 부서 별로 매월 계획을 세워 활동했었습니다. 거기에 학교 숙제, 시험공부, 수도회 행사준비, 월회의 등의 일도 있었지요.
지금의 자기 모습보다 더 젊었고, 또 덜 성숙했던 우리는 늘 함께 생활하며 신나게 놀기도 했고, 열띠게 토론하기도 했으며, 또 싸우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우리는 차례차례로 서품을 받아 발령된 곳으로 신학원을 떠나갔고, 올해 2월에는 저도 신학원을 떠나 이곳 서울 본원으로 왔습니다.
" 제가 입회 했을 때 우리 같이 신학원에서 지냈었는데, 벌써 다들 서품을 받고 나와 이렇게 있네요."
나즈막한 제 말소리는 억수같은 빗소리에 눌려 크게 울리지는 않았지만, 잠시 이어졌던 침묵에는 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좁은 처마 아래 어깨를 맞대고 각자의 생각에 머물러 있던 그 짧은 순간, 다른 분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낀 건 행복같은 작은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십니다. 그 열쇠에 대해 여러 의미로 풀이되지만 오늘 묵상 중에는 그 열쇠는 사랑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묵상 중에 기억난 기사가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헤브론에 하는 지하드 알스와이티(30)라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매일 밤 파이프를 잡고 병원 벽을 기어 올라 2층 창문 틈에 걸터앉아서는 하염없이 병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어머니가 어느날 갑자기 고열과 기침을 시작해 병원을 찾았는데 그만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슺니다. 이미 백혈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가 확진 판정을 받을 때 아들은 이미 어머니의 생존확률이 희박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입원한 뒤로 아들은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파이프를 타고 어머니가 있는 2층 병실 창문 문탁에 앉아 창문 너머로 매일 밤 어머니를 지켜보며 하루빨리 낫기를 빌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 사연은 지나가던 행인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코로나는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그날도 벽을 타고 올라 창문 너머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던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대비 내리는 좁은 처마 아래 맞댄 어깨 너머로, 어둔 밤 어느 벽돌 병원의 2층 창문너머로, 그렇게 우리는 사랑의 기쁨을 느끼고 또 사랑의 절실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1독서에서 말하는 세상의 모든 권력도,
2독서에서 말하는 만물이 나오고 또 향하는 유일한 곳도,
그리고 복음에서 말하는 세상 모든 것을 매기도 풀기도 하는 하늘나라의 열쇠도
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랑 아니고선 다른 어떤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더 사랑하고 더 사랑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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