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828 연중 21주 금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일 묵상 - 번역에서 얻는 것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8. 28. 18:12

외국어를 공부하다보면, 특히 번역을 하다보면, 원문의 의미를 다른 나라 말로 그대로 옮기는 일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옛날 학생 때는 스터디에서 단어 하나 해석하는 걸로 시간 넘게 토론하다 결국 싸움에 이르는 걸 보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던 만큼 그 단어 하나의 해석의 문제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걸리게 되는 문제가 되고 말았던 것이지요.  

 


 

자기가 뭔가 하는게 있거나 관심이 있는 것이 있으면 어딜 가나 그것부터 먼저 보게 되기 마련입니다. 신학교에 다니면 성경에 대해 공부하면서 성경의 번역 과정에 관심이 많이 갔었습니다.

 

구전되던 이야기가 히브리어로 기록되던 , 히브리어에서  희랍어와 라틴어로 번역 되던 때, 그것이 다시 독일어와 영어로, 그리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는 때의 몇가지 단계를 거치며 원래의 의미가 얼마나 보전되었을까 라는 문제는 저에게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근 십 년 만에 연락이 닿은 대학 후배가 지금은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다면서, 저에게 일본어 성경을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한동안 한국어랑 일본어 성경을 병행하면서 봤는데, 그 시절 저는 오늘 1독서의 '코린토 1 1 21절'을 특별하게 만나게 됩니다.

 

고린토 1서 1장 21절은 한국어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어 성경의 이 구절을 번역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로 둘러쌓여 있는데도, 자신의 지혜로 하느님을 아는 것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 자신의 지혜로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하느님의 지혜로 둘러쌓여 있는데도, 자신의 지혜로 하느님을 아는 것에는 이르지 못한다 보는 분에 따라 작은 차이로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묵상을 하는 데에는 큰 차이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어 성경의 구절로 묵상하면서 또다른 픙요로운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혹시 영어,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성경에는 어떻게 되어 있나 궁금해져서 찾아 봤습니다. 먼저 서른 여개 넘는 버전의 영어 성경에는 하나같이 ‘In the wisdom of God’ (주님의 지혜 안에서) 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군데 'see' (보다) 라는 동사의 과거형을 쓰는 영어 버전이 있었는데,  동사의 주어도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이었습니다. 희랍어 성경에도 ἐν, 라틴어 성경에도 in 이라는 전치사를 쓰고 있어 둘 모두 의미는 영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과 동일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어느 곳에서도 '세상이 하느님이 지혜를 본다'라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히브리어 성경도 한참 찾다가 스스로 머리를 쿡 쥐어박고 말았습니다. 이건 신약성경이니 히브리어로 쓰여졌을리가 없는데 한참을 찾고 있던 스스로가 민망해져서 였습니다. 저는 잠시 코린토1서가  히브리어로 없을까를 궁금해했던 바보였습니다. ^^;

 


 

'세상이 하느님의 지혜를 본다'라는 번역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저의 공부가 짧고 또 제가 모르는 한글 성경을 번역하신 분들의 뜻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번역이 다른 성경들을 통해 풍성한 묵상의 길로 우리가 이끌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풍성한 묵상을 할 때 스스로에게 말하며 항상 경계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한 묵상이 항상 하느님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우리의 지혜만으로 하느님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그래서 하느님께서 '오히려 어리석어 보이는 복음 선포라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어리석다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나의 모습이 어쩌면, 쓸데없이 등잔과 기름을 사러간다며 지혜로운 다섯 처녀를 비웃는 다른 다섯 처녀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하루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족한 지혜라고 자주 스스로 부끄러워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느님의 지혜 안에 둘려쌓여 져 있는 존재라는 것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습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죽음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지혜에 더 가까워 지고, 또 무엇보다 그것을 실천하며 형제들과 이웃에게 하느님의 지혜를 전하는 오늘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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