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년 9월 6일 연중23주일 복음묵상 - 충고하기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9. 6. 19:19

만약에 성당 모임이나 신심 단체에서 나눔같은 프로그램을 하는 자리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은사가 뭔지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로 이야기 해보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번 가정해 봅시다. 지혜, 겸손 이런 저런 단어들로 나눔을 하고 있는데  모임에 들어온 어떤 사람 차례가 되어  분이 자신에게 필요한 은사로충고 골랐다면 모임을 먼저 해오신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분 대답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조금 당돌하다고 느껴지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제가 수도원 지원자였을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저를 향한 다른 선배 수사님들의 표정에서 그런 것이 분명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충고는 분명히 서로간의 발전을 위해 유익한 것이고 이것을 하기 위한 소양을 쌓아가는 것은 필요한 일인데 반응이 그랬을까 하고 당시의 저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갓 입회한 지원자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당돌하게 느꼈기 때문일까?'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충고라는 자체가 특히 수도공동체 안에서 쉽지 않은 일이구나 라고 알게 되는 같습니다. 

 


 

어떤 모임 안에서 충고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에 대해 우리 각자가 어떻게 느끼든 간에, 하나 분명한 것은서로 충고한다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충차대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악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 악의 길로 가지않게 경고하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독서는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며,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은 나에게 지은 자에게 가서 타이르되 말은 듣지 않으면 사람이 사람을 데려가서 말을하고 듣지 않으면 다른 민족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라고 하십니다. 

 

독서와 복음 말씀들은 저를 충고에 대한 과거의 저의 기억과 묵상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수도원에 입회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것은 수도공동체 역시 다른 이에게 충고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점입니다. 사회에는 여러 공동체와 다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회에는 함께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상대방을 위해서 해야 되겠다고 판단이 , 고민 없이나 저항없이 충고를 주고 받을 있는 모임이나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에 와서 생활을 할수록 이곳이 다른 곳에 비해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곳임을 알게 되는 같습니다. 돌아보면 이곳에 와서 서로 충고를 주고받는 것에 관해 세가지 도전을 만난 같습니다.

 

첫번째 도전은그건 틀린게 아니라 다른 거야라는 말이었습니다. 

 

사회생활 동안에도 중요하게 여겼던 말이긴 했지만, 수도생활을 동안 체험을 통해 이 말은  개인의 성숙을 위해서 매우 도움과 위로가 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말은 틀린 것에 대해 틀리다고 말하는 것을 막는 장애가 되기도 했습니다. 측면에선, 맞고 틀리다는 것에 대한 판단과 확신을 갖지 못하게 막는 걸림돌이 되었고, 다른 측면에선 틀린 쪽의 강력한 방어수단이 되었습니다. 사랑에 기초한 아무리 열띤 나눔과 대화가 있었다 해도그건 틀린게 아니고 다른 거니까 나에게 강요하지마!”라는 말에 당해낼 말을 찾기 어려워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이런 계속되는 방어는 주변의 사랑을 점점 지치게 하고 결국그 사랑을 거두게 하기도 했습니다.

 

두번째 도전은다양한 수동적 공격을 목격하는 이었습니다. 

 

나은 길을 알려 준다는 또는 가는 길이 악의 길이니 멈추라고 이야기 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적절한 것이고 타당한 방법이었다 해도, 말하는 이는 거센 후폭풍을 감수해야 하며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그에게 다시 돌아올 것임을 감내하고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보통 경우 논리나 윤리 보다는 기분에 의해 다른이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을 봅니다. 저희 형제들끼리 유행어 처럼 하는 농담 중에말은 맞는데 기분은 나쁘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농담이지만 뼈가 있지요. 일단 기분이 나쁘면 그걸로 다른 사람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세번째 도전은서품입니다.

 

흔히들 하는 말 중에 ‘Ego pater, Tu pater’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신부고 너도 신부다’. 이 말은 너도 신부지만 나도 신부니 나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마라는 의미로 농담처럼 자주 쓰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양성기 동안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서품 받고 나면 아무도 너에게 뭐라 못한다. 그러니 성장하고 변화하려면 양성기 동안에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 다짐을 반복하죠. 나는 서품 받고 나서도 겸손히 듣고 끊임없이 성장을 위해 노력할 꺼야.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서품  후에는 만나는 사람들이 수도원 밖으로 다양해지면서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 일은 극도로 줄어듭니다. 밖에서 만나는 분들은 저의 좋은 모습만을 분들이거나, 그분들의 취향에 제가 맞기 때문에 저를 만나려 하시니까요. 오히려 만나면 저보다 다른 분들의 흉을 보시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같이 흉보며 내가 맞다는 쾌락 즐기기라는 끈질긴 유혹에 맞서게 됩니다. 이런 유혹은 생각보다 물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 도대체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말하는 충고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충고하는 사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나는 어떤 목표를 갖고 노력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충고라는 단어가 성경에서는 나오는지 어떻게 등장하는지 찾아보고, 거기 나오는 것들을 목표로 노력해보면 어떨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약성경에 한글로 충고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올까요? 8 나옵니다. 좀 길지만 참고로 읽어두시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요한복음 18 14카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유다인들에게 충고한 자다.”라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카야파의 장인 한나스에게 데려가는 장면에서 카야파를 설명하는 말로 나옵니다.

두번째는 코린토 2  8 10절에는 일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가지 충고를 하겠습니다.” 라며 자발적인 열의에 어울리게 형편에 따라 헌금하라는 바오로의 충고로 나옵니다.

세번째는 로마서 15 14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너그럽고 지식이 풍부하여 서로 충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이라고 바오로가 자신의 사도직을 스스로 보증하기 위해 이야기합니다. 

네번째는 고린토 1 7 6이말은 명령이 아니라 충고입니다.”라고 바오로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사용됩니다.

다섯번째는 필립비서 4장에 마지막 충고라는 본문이 아니라 부분의 제목으로 등장합니다.

여섯번째는 골로사이서 3 16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고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라고 나옵니다.

일곱번째는 디모테오 1 5 1노인에게는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아버지를 대하듯이 좋은 말로 충고해 드리시오라고 신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할 나오고,

여덟번째는 역시 디모테오 1 5 2나이 많은 여자들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이, 젊은 여자들에게는 자매에게 하듯이, 오로지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충고하시오.”라고 신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할 나옵니다.

 

열덟가지 말씀 중에 충고를 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입니다.

하나는 로마서 15 14절에서 바로오가 자신이 충고할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는 근거로마음이 너그럽고 지식이 풍부하다 것을 들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골로사이서 3 16절에서는 충고할 모든 지혜를 다하여하라고 합니다.

마지막 하나는 디모테오 1 5장에서 충고라 남한테가 아니라 가족에게 하듯이 순결한 마음을 갖고하라고 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신약성경에 나오는 충고는 다섯가지입니다.

마음을 너그럽게 갖고,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모든 지혜를 다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가족에게 하듯이 좋은 말로 해야 하는 이었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저는 맙소사 라고 연발했습니다. 다섯가지 모두 하나하나가 갖추어 나가기 쉽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중 제일 어려웠던 것은가족들에게 하듯이 좋은 말로 하는 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은 가족끼리 좋은 말로 하시나요? ^^ 저도 그렇지만 가족에게 오히려 함부로 하는 같습니다. 이런 것들을 갖추고 충고를 하려면 저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못할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충고도 웃어 넘길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부족한 모습으로라도 다섯가지 목표를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놓고 성찰하면서 실행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인 같습니다.

 

또한 부족한 모습으로 서로 충고를 주고 받는 것에 관해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희망줍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전에 중요한 말씀을 이렇게 하십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충고를 주고 받을 때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의 충고의 부족함을 메워 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충고의 부족함을 메워 받아들이"는 자세인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 5 에서 우리에게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번 , 아니 제가 사는 일생 동안 충고에 대한 다섯가지 자세마음을 너그럽게 갖고,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모든 지혜를 다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가족에게 하듯이 좋은 말로 해야 하는 쌓아나가며, 내가 부족함을 잊지않고 사랑으로 채워 충고 해주고 상대방이 부족함을 잊지않고 사랑으로 채워 그의 충고를 받을 아는,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서로 밝히는 수도자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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