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년 9월 7일 연중 23주 월요일 복음 묵상 - 내가 본 적 없던 너의 석양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9. 7. 17:48

 

 

어쩌다 문득 내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보게 되었구나 하며 부끄러워 지는 때가 있습니다. 애써 다른 이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한다고 하며 지내다가도 때때로 찾아오는 그런 순간에는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잘 지내고 있다고 여기던 자신의 겸손하지 못한 생각에 머슥해 지기도 합니다.

 


 

"수사님, 수사님이 좀 찍어주세요."

 

그날 아침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미사 후에 본원에서 함께 미사 한 신부님들은 제대 앞에서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낼 단체 사진을 찍기위해 섰습니다. 그날은 인근에서 실습을 하고 있던 수련기의 수사님이 수련장 신부님과 본원에 방문 해 있던 터라, 관구장 신부님은 수련 수사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수련수사님이 어색해 하며 폰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머리 위로 들어 찍으려고 하자 관구장 신부님이 폰을 좀 내려 찍어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수사님은 190정도가 될 정도로 키가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거기다 머리 위로 폰을 들어올려 사진을 찍으려 하니 조금 이상하겠다 싶으셨던 거죠. 제일 가까이 있던 제가 가서 앵글과 높이를 잡아드리고 제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또 그 수사님은 머리 위로 들어 사진을 찍으셨어요. 그래서 그냥 다들 더 말하지 않고 다들 좋다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드랬습니다. 저도 그렇게 만족하고 웃으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저의 마음 한 켠에는 조금의 불편함이 잠시 남긴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얘기했고 또 제가 직접 가서 애써 도와주었는데, 전혀 그런 것들을 고려해 주지 않는 것이 섭섭했기 때문이죠.

 

폰을 받아 그 수사님이 찍은 사진을 보고 제 생각은 바로 바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워 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진은 보통 우리가 찍은 사진과 달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다소 어색한 앵글이었는데,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가 그 폰을 돌려주며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 이 수사님이 보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구나!'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을 두고 예수님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면을 만납니다. 율법학자들로가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은 '하느님을 생각하는 날'이기도 했겠지만 아쉽게도 또한 '이 날에는 일을 해선 안된다는 계명을 남이 지키는가를 측정하는 기준"정도 이기도 했던 듯 합니다. 게다가 나아가 이날을 예수님을 시험하고 옭아매는 덫으로 삼기까지 하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에게 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안식일'은 무엇인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의미를 잃고 다른 이들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고 나아가 다른 이들을 옭아매는 덫으로 삼고 있는 것은 없는가.

 

그러자 그 날 아침에 있었던 그 수사님과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세상 그 자체가 그 수사님에게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안식일일 수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다른 이들에 대해 열려 있지 못한 자신을 만날 때면 제게는 항상 생각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일본 드라마 뷰티블 데이즈는 한 미용사 청년과 하체가 부자유로운 도서관 사서의 사랑을 다룬 오래된 드라마입니다. 그 드라마를 통해 저는 장애를 안고 사는 이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다가가야 하는지 깊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도 처음에는 무지막지하게 대하다가,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데이트를 해가는 도중에 지금의 사회가 얼마나 장애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 불편한 곳인지를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해 그 앞에서 만났는데 입구부터 높은 계단이 있는 곳이라 휠체어를 들고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든지, 평범한 길을 걷는데 보도블럭의 울퉁불퉁함 때문에 도저히 휠체어가 다닐 수 없었다든지, 별 것 아닌 길가의 턱도 휠체어를 들어야 지나갈 수 있었다든지 하는 경험들 말입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남자 주인공이 정말 여자 주인공에게 진실로 마음을 연 날 그는 그녀를 자신만의 장소로 데려가 늘 혼자 바라보던 석양을 함께 바라봅니다. 그곳은 어느 도심의 한 육교 위 였습니다. 높은 육교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시 가운데로 져가는 석양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그것을 선물로 주며 나누고 싶었던 겁니다. 그가 한참 풍경을 보며 속마음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아니, 왜 울어요?"

 

당황한 그는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묻습니다. 그러다 문득 앞을 바라본 그는 그만 얼굴이 굳어지고 맙니다. 

 

'이게.. 이게 이 친구가 지금까지 보아온 세상이였구나...'

 

그의 눈에는 석양과 도시의 풍경을 가로막고 있는 육교의 난간 만이 들어왔던 겁니다.

 


 

 

나의 세상을 잘 살아나가기 쉽지 않은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편히 여기는 것, 내가 당연히 여기는 것을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친 우리에게 휴식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끔 의자 위에 서서 세상을 본다거나, 육교를 지나가다 잠시 앉아 보는 것은, 내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모시는 것을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소중한 일인 것 같습니다.

 

 

 

형제가 보는 세상을 보지 못하고 내가 만든 섭섭함과 미움으로 살아가는 저를 당신의 마음으로 더 이끌어 주소서.

예수성심 온 세상에서 사랑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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