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19년 12월 24일 화 성탄전야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19. 12. 26. 21:33

수도생활을 하면서 교리나 성경에 대해 너무 당연하고 기초적인 것을 몰라서 함께 웃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선교학 수업시간에 신부님께서 대영광송 이야기 하시다가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라는 이 기도문이 성경 어디에서 나오니? 

여기 뿌리무스 형님은 알겠지. 한 번 말해봐.” 라고 하시는 겁니다. 뿌리무스는 통상 그 그룹에서 

제일 연장자를 말하는 것인데, 그 때 저였죠. 저는 몰라서 그냥 영광 평화 이런 말이 나오길래 ‘요한묵시록’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부님은 큰소리로 ‘요한묵시록’이라고 이마를 치셨고, 우린 한바탕 웃었지요?  여러분은 성경 어디서 나오는지 다 아시죠? 

바로 루카 복음서에 오늘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장면에 나옵니다. 천사들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하며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오늘 복음 마지막에 나오는 이 천상 군대들의 찬미는 우리가 지금 이 성탄을 어떻게 맞이하면 좋은지 

그리고 우리가 맞는 이 성탄의 메세지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이 성탄은 “하늘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찬미가 나오는 곳이 루가복음에 또 있는데 그 상황과 때가 참 묘합니다. 어디서 또 나오나면 

루가복음 19장 38절에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라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찬미하며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때가 어떤 때냐면 예수님께서 이제 수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맞이하시기 위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탄생 때 하늘의 군대들이 바쳤던 찬미를 수난과 죽음의 시작을 맞이하는 곳에서 

사람들로부터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찬미는 오늘 복음의 찬미와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네 평화가 하늘에 있다고 사람들이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의 이야기는 바로 다음에 이어서 나옵니다. 

41절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라고 

평화에 대해 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걸 두고 하늘의 군대들이 땅의 평화를 노래했는데 

예수님께서 생을 마쳐가시는 순간까지도 예수님은 무엇이 평화를 가져다 주는지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시며 슬퍼우셨던 것입니다.

  여러분..그 순간 예수님은 무엇이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말씀하셨던 것일까요? 

저는 천사들의 찬미이자 대영광송의 시작인 ‘땅에서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에서 

그 힌트 중 하나를 발견합니다. 사랑 입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 지 

경험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겁니다. 그 힘이 어떠한 것인지.
사랑은 상상하지도 못할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사람의 몸에 당신 자신을 인간으로 잉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으로 탄생하셔서 이 세상을 뒤바꾸셨습니다. 그렇게 주어진 세상의 평화는 

예수님을 몰라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몰라본 사람들에게는 즉, 사랑을 몰라본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오늘까지의 여러분의 삶 안에서 사랑이 어떤 일들을 해내어 왔는지 한 번 돌아봅시다. 

성탄의 의미는 내 안의 새로운 희망과 시작이라는 것도 있지만 내 안에서 일해왔던 사랑을 다시 알아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묻어 두었던 사랑을 오늘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지난 토요일 독서의 애가와 복음에서 엘리사벳과 성모님이 만나는 아름다운 장면에서 저는 지난 제 삶 속에서 

누군가를 좋아했던 사랑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가 어디서 무얼하고 있든  어느 틈에 내 마음과 생각은 그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길을 걷다 혹시 고개를 돌리면 그 사람도 저기서 걷고 있지 않을까, 버스를 타고 들어가다 혹시 그 사람이 앉아 있지 않을까, 

전화기를 들고 연락을 할까 말까 벅찬 마음에 망설이고 있다 혹시 먼저 그사람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며, 

괜한 기대에 혼자 얼굴을 붉히며 스스로를 나무랐던 기억도 났습니다.
  그러다 정작 우연히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날이면 가슴이 벅차고 무서워져서 바보처럼 마음 숨긴 채 무심하게 

인사하고 돌아서 버리고 나서는 내내 머리를 움켜쥐고 후회하던 그런 아프지만 빛나던 날의 사랑의 기억을 여러분도
하나 쯤은 갖고 있지 않으신가요?
   사랑에 빠지면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방 창문 밖의 나무도 세상 어떤 나무보다 아름다워 보이고, 

나를 괴롭히던 그렇게 싫던 사람마저 가서 꼭 안고 볼을 비벼주고 싶어지며, 우울하게만 보아왔던 

하늘의 먹구름도 그윽한 밤향기를 내뿜는 로맨틱한 소품으로 느껴집니다.

사랑의 힘이지요.

지난 토요일 독서의 애가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면  내가 또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너무나 아름다운 마음과 글들로 잘 알려줍니다. 내 안에 추억의 방에 잠궈 놓았던 어린 시절 순수한 사랑의 기억을 

다시 내 책상 위로 끄집어 내주고, 살면서 나도 모르게 건조하고 각박하게 만나 버리고 있는 주위의 이웃들과 사물들을 

다시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엘리사벳도 성모님은 아기를 정말 잉태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기쁨과 설렘도 컸겠지만

그 마음 안에 걱정과 두려움은 또한 얼마나 컸을까요? 하지만 성탄을 앞둔 몇 달 전 서로를 만나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 

더 큰 확신을 서로 나누면서 그 걱정과 두려움의 마음과 또 그 마음으로 바라보던 세상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 아기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들에게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었을 겁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세상이 완전히 달라보이는 것 처럼요. 그들의 마음에는 그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얼마나 큰 평화가 찾아왔을까요?

  내 안에 한번 찾아왔던 사랑은 이제 가고 없는 것 같아 보여도 그 사랑을 했던 경험은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은, 그 경험과 기억을 통해 우리와 사랑하고 싶어 하실 것 같습니다. 

잊었던 내 지난 삶의 사랑을 다시 가져와 알아보고 지금 내 안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 

그 사랑 안에서 세상과 이웃을 다시 보는 것. 그 안에 하늘의 군대들이 알려준 사랑과 평화의 비밀이 있을 겁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들, 아마 많은 분들은 나를 힘들게 하는 세상의 어려움이나 주변의 이웃들 또 나 자신도 

변화하지 않을 것만 같은 절망을 마음 한구석 말라버린 사랑의 자리에 가지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며 잊었던 우리 삶안의 사랑을 다시 알아봐 줍시다. 그 힘을 기억합시다. 

그것이 우리에게 준 평화도 다시 기억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되고 

또한 하느님께 영광을 올려드릴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천사들과 하늘의 군대들과 함께 찬미드립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