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191216 대림 2주 금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19. 12. 16. 07:18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 묵상 >

 

  서태지라는 이름은 메스미디어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였음에도 우리나라 대중음악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과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비록 시간이 한참 지난 뒤 그들의 데뷔앨범의 타이틀곡 '난 알아요'가

표절 시비를 불러일으켰고, 그룹이 맵버들이 불미스러운 일들에 휩쓸려 그들이 가졌던 의미와 위상이 예전같지는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떠올랐던 이야기가 바로 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TV에서 데뷔무대를 가졌을 때의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지금의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한

방송에 처음 나와서 노래와 춤을 보여주었을 때, 지금 한국의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하나인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씨는 세명의 채점평가자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아주 낮은 혹독한 점수와

평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얼마지 안아 서태지와 아이들은 폭풍과 같은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한국의 대중음악시장을

주도하는 거대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시장에서 이수만씨의 사업능력과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때의 이수만씨의 평가는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재능을 보는 그의 날카로운 눈도 항상 맞아 떨어지는 것

만은 아닌 듯 합니다.

 

  수도원에서나 신학교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스스로가 수도생활을 해 가는 것과 함께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을 보는 눈'입니다. 이 눈은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눈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과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달란트를 알아보는 눈입니다. 양성분야에서 일하는 수사님들에게 이 눈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눈에 따라 한 두사람이 아닌 많은 그 수도회나 신학교의 피양성자들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의 결과들은 수도회나 교구 나아가 교회의 미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이 사람을 보는 눈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는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라고 하며 서로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다고 서운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은 남을 탓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의 피리소리와 춤과 곡에

응해주지 않았지요. 자신의 모습은 못보고 남만 내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 더러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라고 하며 자기들이 보고싶은 대로만 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군상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행동이나 외면 너머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던 사람들, 또 예수님과 그

세리들과 죄인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어떤 이야기들이 나누어 졌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 너머에 어떤 일들과 어떤 의미들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

사람을 보는 눈도 바로 그런 관심에서 시작합니다. 신앙도 바로 그런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누구에게나 다 그런 달란트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은 아닙니다. 이수만씨의 경우 처럼 많은 재능이 있어도 누구나

실수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부족한 달란트 때문에 또 어쩔 수 없는 실수 때문에 아픈 일들을 겪어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너머에 어떤 일들과 어떤 의미들이 있는지 꾸준히 살펴보려고 해야 합니다.

거기가 바로 하느님의 뜻과 큰 계획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잘 되지 않고 또 실망스러운 길이 될 지라도

오늘 독서의 이사야의 말씀에 희망을 둡시다. 하느님은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이기 때문입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 그 너머를 봅시다.

 

 

 

 

 

 

 

 

 

 

 

 

 

주수병 뚜껑 깨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