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191210 대림 2주 화요일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19. 12. 10. 09:47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1-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복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 묵상 >

 

괜히 정이 가지 않고 이상하게 친해지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나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정작 상대방은 나에 대해 이렇게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괜히 주변에 나에 대한 험담이 돌아다니고 

내가 했던 말이 곡해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결국 사람들로 부터 비난을 당하거나 

또는 누구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지만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경우는

무어라 해명하기도 이상하고 그냥 그렇게 감수하고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이렇게

'나는 억울하다. 피해자다.' 라는 사고에 나를 두게 되면

그때부터는 나의 내적인 성장은 멈추어버리게 됩니다. 

그 프레임 안에서 나는 이미 너무나 안스럽게 상처받고 억울한 피해자이니

자신이 스스로에게 본인의 부족한 면을 직시하게 해서 성장 할 수 있게끔 

무언가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본인 조차에게도 그러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욱 패쇄적이게 됩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조언하면 그저 

'아!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비난하는 구나' 라던가

'아! 이 사람은 내 편이 아니구나' 라던가

'아! 이 사람은 가까이 하면 안되는구나' 라는 식으로 생각해버리게 됩니다.

 

그러고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어딘 가에서는

그 사람에게 기회가 오면 세련되게 복수해야지 하는 마음이 심기게 되고

머리의 한 구석에서는 그와 관련된 사고 작용들이 이루어지며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억울하다는 감정 때문에 내 안의 그런 작용들을  못보고 말거나

보게 되어도 합리화 하게 되어 버립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라고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의 위대함을 알려줍니다.

우리 사람들의 말은 무디기나 날카롭기는 하느님 말씀 못지 않지만

무딜 때 무디고 날카로울 때 날카로울 아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남에게나 스스로에게 제 기능을 못하거나 너무 지나치게 기능해서

쉽게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에서 한 마리 잃어버린 양들을

끝까지 찾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하느님의 말씀의 위대하심은 이 약속을 보증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작용하고 계십니다.

 

 

< 실천 >

 

우리는 틈틈이 우리가 잃은 양이 되었을 때 찾아졌던 체험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마 적어도 한 두개 라도 모두 갖고 있을 겁니다.

오늘 하루 그것들을 상기해서 기억하고 또 간직합시다.

그런 희망으로 내가 비록 억울하고 피해자이기만 한 것 같은 현실에서도

스스로를 거기에 가두지 말고 자신의 부족함을 성실히 

돌아보는 하루를 지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