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10330 성주간 화요일 묵상 - 권력을 내려 놓는다는 것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1. 3. 31. 00:18

20200330 성주간 화요일 묵상 - 권력을 내려 놓는다는 것 -

 

 

 

 

 

 

신학원에서 양성장으로 신학생 수사님들과 생활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피양성자로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아 양성장으로 산다는 경험 역시 감사로운 면과 도전적인 면이 함께 있었습니다. 

 

지난 한 달의 생활을 성찰 할 때면, 저에게 자주 와 닿는 성경의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중풍으로 괴로워 하는 종을 위해 예수님께 찾아갔던 백인대장입니다. 자기와 함께 있는 아픈 사람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저와 비슷해서가 아닙니다. 그가 한 말 때문입니다. 그것이 요즘 제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입니다. 


그러고 보니 방금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지금 글을 쓰다보니 함께 있는 아픈 사람을 위해 애쓰는 모습도 닮은 것 같네요. 병원에 가끔 함께 가기도 했었으니. 어쨌든 저에게 그 백인대장이 와 닿았던 건 그가 한 다음 말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마태 8,9) 

 

지금 저와 함께 사는, 어느 신부님의 표현처럼 '세상에서 가장 착한 청년들'인 신학생 수사님들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매우 노력하며,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신학원장 신부님과 부신학원장인 저의 양성방향과 그와 관련되는 여러 결정들에도 잘 따라와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사님들에게 매우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에 막내 사제로 서울 본원에서 살던 때와 완전히 반대가 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반전된 상황이 저에게는 매우 큰 도전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저에게 준비되지 않은 권위와 함께 준비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것도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놓치고 배려해 드리지 못하는 일들도 있을 법한데, 그런 때에도 저를 믿고 잘 따라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제 삶의 어느 순간 보다 지금 저는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저에게 세상은 신학생 수사님들과 함께 사는 이 신학원이 거의 전부인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두 번째 가는 지위에 있으니 그 권위에 따라 오는 권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요즘 그 권력을 저의 부족함으로 함부로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주 성찰하며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성찰 중에 발견하게 되는 깊은 체험이 있습니다. 내가 책임자로서 이들을 움직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권력이지만, 이들을 변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건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마음이라는 겁니다. 사실 그 중요한 일엔 권력이라는 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체험하고 있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악마에게 권력의 유혹을 받으시는 장면을 묵상할 때면, 예수님께서 큰 유혹을 어떻게 참아내셨을까 묵상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저는 그 권력이 예수님에게는 실은 아무 유혹도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삶의 목적이 나의 편함이 아니라 세상과 나의 변화라면, 권력은 사실, 그것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예수님은 알고 계셨던 건 아닐까요? 그랬을 꺼라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의 권력으로 배신하지 않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에는 그가 변화하길 기다리는, 권력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이제는 보게 됩니다.

  

제가 여기 지내는 동안 계속해서 권력의 편리함과 거리를 두며, 사랑의 마음으로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의 힘과 지혜를 하느님께 청하고자 합니다. 분명 지내는 동안 쓰러지는 날이 오겠지만, 이번 부활절을 지내는 동안 믿음으로 희망을 두는 법을 더 배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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