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마태복음

20240701 연중 13주 월 묵상강론 마태 8,18 - 22 [세상이 그럭저럭 굴러가는 이유는 가까운 곳에]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4. 6. 30. 23:31

20240701 연중 13주 월 묵상강론 마태 8,18 - 22 [세상이 그럭저럭 굴러가는 이유는 가까운 곳에]

 

 

어제 본원에 하루 피정이 있었습니다. 본원에서 피정을 하게 되면 최소한 두 명의 신부님이 담당하게 됩니다. 한 분은 피정의 강의와 미사를 담당하고 다른 한 분은 시설과 점심식사 등으로 보조합니다. 제가 요즘 사정상 잠시 임시 본원장을 맡고 있어서 피정을 준비할 분을 섭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본원의 모든 신부님들이 다른 일정이 있어 시설과 점심을 담당해 줄 분이 일주일 넘게 계속 구해지지 않았어요. 저 역시 몇 달 전부터 약속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십 년 만에 많은 예전 직장동료들을 한 번에 만날 중요한 자리였죠.

 

...

 

"미안하다 대원아. 오늘 행사가 늦어져서 못 갈것 같다. 미안하다고 전해도. 아쉽지만 다음에 보자."

"형님 못옵니까? 아쉽지만 다음에 봐야겠네요"

 

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감사하게 어제저녁 두 분이 잠시씩 돕겠다고 나서주셨지만, 피정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상황을 챙겨야 해서 차마 본원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냥 아침에 나가버릴 걸 하고 솔직히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나만 거절 못하고 고생하나 하는 푸념도 들었습니다. 잠시는 다른 신부님들께 섭섭한 마음도 조금 들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되어 피정 오신 분들이 식당으로 내려오는데 리더 분이 한쪽 눈을 부여잡고 걸어오고 있는 겁니다. 다가가 물으니 타이레놀을 하나 까먹으며 억지로 통증을 참고 계셨어요. 그래서 얼른 영업을 하는 약국을 찾아 알려드렸고,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리더분은 다행히 약국이 닫기 전에 다녀오셨고, 안대를 한 채 통증을 참으며 남은 일정을 다 잘 소화하셨어요. 리더분 뿐만 아니라 아침 일찍부터 와서 행사준비를 하고 끝나고도 남아서 마무리 정리를 하며 수고하신 임원분들을 지켜보면서, 교회의 한 일원으로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런 모습이 우리 교회의 힘 아니겠습니까? 저분들의 수고를 피정에 참석하신 분들은 다 보지 못하셨죠. 그래도 그분 들의 수고를 아시는지 다 잘 협력하고 기쁜 영 안에서 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제의 리더와 임원 분들이 애쓰시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어디를 가든 리더와 봉사자들은 애쓰는 만큼 위로와 인정을 받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도 그랬겠지요. 어제 잠시씩 후회하고 푸념 들고 또 섭섭해했던 저의 마음도 돌아봅니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 제가 제 일을 보는 동안 본원자리를 지켰던 분도 있었고, 어제 어렵게 일정을 조정해 돕겠다고 나서주신 두 분도 있었고, 또 준비하는 동안 걱정하고 지지해 주신 분도 계셨고, 그리고 다른 신부님들도 어제 본원 밖 어디선가 그렇게 리더나 봉사자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셨을 신부님들의 애씀과 감사함을 어제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묵상 중에 성찰하게 됩니다.

 

...

 

돌아보면 내 마음에 취해 보지 못했던 주변에서 애쓰시는 또 보이지 않게 희생하시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자주 세상이 맘에 안 들고,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고, 내 애씀이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도 안에 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됩니다. 세상에 숨겨져 있던 보물들이 보이고, 내 마음이 어느새 좁아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이 엉망처럼 보여도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는 건 내 가까이에서 숨겨져 잘 안 보이는 보물들 때문이라는 걸 왜 자주 잊게 되는 걸까요? 나도 누군가에게 숨겨진 보물이 될 수 있도록 더 깊은 겸손함과 더 성숙한 열정을 주님께 청합니다. 숨겨진 주변의 보물들을 더 잘 알아보고 감사할 수 있는 지혜도 청합니다. 

 

피정을 도우면서 저도 감사한 피정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