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마태복음

20240715 부활 15주 월 묵상강론 마태 10,34 -11,1 [SNS와 예수님]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4. 7. 17. 21:39

[ SNS와 예수님 ]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영향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과 가톨릭 신앙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통하고 있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통해 이런 묵상한 과정을 간략히 나누려고 합니다.



새 미디어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것의 고유한 특성이 반영된 새 안경을 쓰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식 자체가 보내는 메세지가 있습니다. 텔레비젼은 우리에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며,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SNS는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보내고 있을까요? 캐나다의 대학교수 마셜 매클루언은의 아이디어를 빌어 저의 아이디어를 덧붙이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씩의 메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트위터는 첫째, 단순한 발언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둘째, 빠른 속도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셋째, 그것에 사람들이 동의하고 박수를 보내느냐에 성공이 달렸다.

페이스북은 첫째, 우리의 삶은 전시관이다. 둘째, 거기에 즉시 좋아요가 눌려야한다.셋째, 서로 모르고 직접 만나지 않아도 좋아요를 서로 누르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인스타는첫째, 중요한 것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냐다.둘째, 중요한 것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냐다.셋째, 중요한 것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냐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 SNS들이 주는 메세지에 길들여져 오고 있는 겁니다. 특히 SNS가 없던 세대를 모르는 더 젊거나 어린 세대들에게는 이 메세지들이 더 강력하게 전달되어 있습니다. 전혀 이해할 수 없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죠.

..

그런데 묵상 중에 저는 놀라운 점 하나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이런 SNS 처럼 당시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미디어 역할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 미디어로서의 전달방식은 바로 우리 가톨릭 교회 핵심 교리 중 하나인 강생구속입니다.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예수님의 전달방식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계속해서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것들이 지금 SNS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와 정반대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육화라는 예수님의 전달방식의 메세지는 오늘 복음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첫째, 겉모습이 아니라 속내용이 중요하다. (가족이 원수가 된다거나, 십자가의 길) 둘째, 세상은 복잡하고 긴 시간과 오랜 시간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평화와 칼, 목숨을 얻는 방법, 십자가 죽음), 셋째, 직접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참된 좋아요 즉 사랑은 즉각적인 행위가 아니다. (육화, 복음선포여정, 부활, 재림)



SNS가 가진 좋은 영향들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자리잡아가는 메세지를 잘 알아채고 경계해야 합니다. SNS를 만들고 또 그것으로 수익을 내려는 기업들이 설계하는 세상과 우리 행동방식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가톨릭적 세계관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내면의 아름다움에 눈길을 주고, 조금 더 세상을 긴 시간 안에서 긴 호흡으로 만나며, 직접 만나나가며 오랜 시간 사랑을 쌓아가는 지혜의 메세지를, 우리는 매일의 복음과 묵상과 성사 안에서 만나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핸드폰을 열어 좋아요의 개수를 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20240715 부활 15주 월 묵상강론 마태 10,34 -11,1 [SNS와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