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220 재의 수요일 후 금요일 - 죽음과 마주보며 걷기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1. 2. 20. 06:45

 

 

 

 

어제 뜻깊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근처에 있는 수도원을 찾아 그 수도회의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다른 수도회지만 같은 반에서 수업하다 서품 받은 동기 신부님입니다. 서품 후 1년 동안 다른 곳에서 소임을 하다 1년 만에 그 수사님도 저도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달랐지요. 저는 이곳에서 학생 수사님들과 동반하는 일을 하게 되어 온 것이고, 그 수사님은 외국으로 선교를 가기 위해 임시로 대기하러 온 것이예요. 온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서로 바빠서 못보다가 다음 주가 출국이라 더 미루지 못했어요.

 

신학생 시절 공부하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고 함께 한 시간도 좋았기 때문에, 가기 전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했습니다.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이리저리 푼돈도 준비하고, 떠나는 심정도 나누고 싶고, 가기 전에 강복이라도 해 주고 싶었습니다. 

 


 

수사님이 가는 곳은 부르키나파소 라는 나라입니다. 저도 처음 듣는 곳이었어요. 아프리카 대륙 서북쭉에 있는데 세네갈, 가나, 나이지리아 주변에 있는 곳입니다. 수사님네 수도회에서 15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국민의 80%가 이슬람이고, 간간이 이슬람 성전 주의자들이나 무장 괴한들에게 여행자들이 납치되거나 마을이 공격받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유럽출신 신부님이 납치 되었다가 몇일 뒤 시체로 발견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물품들을 준비하고 있고 출국 전날인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유서를 쓰도록 요청받았다고 합니다. 심정을 물었더니 본인이 원했던 선교를 갈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그렇게 큰 걱정은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수도회 외국 신부님들이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곳이라 안전하다고 하지만, 저는 필리핀에서 선교실습 할 때 방문했던 남부지역 산위 마을의 공소가 생각났습니다. 한참을 걸어 그곳에 막 도착했을 때 머리 위로 헬리콥터가 지나갔습니다. 그걸 보며 옆에 있던 필리핀 신부님이 이야기 하셨습니다. "브라더 리차드, 저거 어제 이 마을에서 있었던 무장세력과의 총격전에서 죽은 시체가 실려가는 거야." 

 

 


 

"죽음을 향해 가는 길"

 

예수님의 삶을 표현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특히 오늘 복음과 같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들을 만날 때면 이런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루카 5,30)

 

'병든 이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듯,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이미 죽음을 향해 성큼 내딛는 걸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빠짐없이 매일 죽음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죽음과 더 가까운 곳을 걷고 있고, 어떤 이는 죽음을 향해 다시 방향 잡고 있으며, 어떤 이는 몸부림치며 끌려가고 있고, 또 어떤 이는 그 길이 어디를 향하는 지를 자주 잊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마주 보며 걷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주보는 동안에는 죽음을 향해 걸음을 딛는 일이 더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이왕 걷게 된 길이라면 끌려가고 싶지 않습니다. 꺼꾸로 걷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잊은 채 내 소중한 길을 걷고 싶지도 않습니다. 소소한 내 하루의 삶에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과 생각이 죽음 앞에 부끄럽고 싶지도 않습니다.  

 

배웅하는 수사님의 손에 크진 않지만 준비한 작은 마음을 전하고,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와 강복을 드렸습니다.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 집니다. 그 때쯤이면 서로 많이 변해있겠지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죽음을 제대로 마주보려고 합니다. 그 앞에 부끄럽지 않은지 비추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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