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요한복음

20210929 연중26주간 수요일 대천사 축일 묵상 강론 - 예수님이 아니라 - 요한 1, 47 - 51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1. 10. 1. 15:57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던 시기, 필립보의 "와서 보시오"라는 말에 나타나엘이 응답하면서 이루어 지는 장면을 전해 줍니다.입니다. 먼저 저의 시선은 나타나엘에게 향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타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기 전이 이미 나타나엘이 대해 알고 그를 이미 눈여겨 보고 계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예수님께 다가가기 전에 말입니다. 나타나엘도 그런 예수님을 보고 바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 고백합니다. 이 축약되어 있는 만남의 장면의 사이를 매꾸는 전해오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권능의 힘으로 만나기도 전에 나타나엘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이야기도 있고, 당시 무화과 나무는 사람들이 종교적인 깨우침을 추구하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런 나타나엘의 종교적 열망을 예수님께서 높이 평가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은 당신 위에서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처음 만났던 날을 돌아보던 저는 이 장면에서 저의 시선은 나타나엘에게서 예수님에게로 건너갑니다.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시면 당신 공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 그리고 당신의 신원을 밝히시려는 계획을 원대하게 밝히시는 예수님의 열망찬 풋풋한 모습을 봅니다. 그 반면 선교사명의 길 위에서 지금 다소 오래되고, 다소 진부해지고, 다소 지쳐있는 저의 모습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꾸 3년이 아니라 30년의 공상활을 하셨다면  먼 길을 가는 우리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들을 조금더 나누어 주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셨던 그리고 당신을 따라 우리가 가기를 원하셨던 길은 장기간의 숙련이나 공부같은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 중요한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에서 나의 몫은 예수님처럼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도록 내가 사용되어 지는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아니라 필립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저의 눈은 다시 예수님에게서 필립보에게로 넘어갑니다. 

 


 

오늘 복음 바로 전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한 "와서 보시오"라는 말은 최근 발표된 교황님의 제 55차 홍보주일 담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담화문에서 "와서 보시오"는 현대의 선교에 가장핵심되는 말이며, 인간 간의 소통의 깊은 차원을 다루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단순히 정보를 퍼나르지 말고 실제 삶을 보여주라고 강조 하십니다. 

 

 

단순히 정보를 퍼나르지 말고 실제 삶을 보여주는 것. 이는 단순히 홍보에만 국한 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선교의 가장 핵심을 표현하기도 하며, 한 명의 수도자로서의 저의 삶의 사명일 뿐만 아니라, 제가 속한 예수성심 전교수도회 전체에게도 핵심되는 소명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말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많고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삶에서 보여주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지금의 시대에 SNS 등을 통해서 보여지는 그런 삶이 많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상의 홍수 안에서도 역시 실제 그런 삶은 적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의 이런 저의 시선의 흐름 속에 스스로의 모습을 성찰하며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당분간 매일 이 기준으로 저를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공감이 가는 질문이 있으시다면 몇 일 이 질문에 저와 함께 머무시도록 초대하고 싶습니다.

 

첫째, 나는 선교사로서, 수도자로서,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예수성심전교수도회의 홍보담당으로써, 또 우리 수도회의 한 회원으로써 다른 이에게 '와서 보시오'라고 할 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둘째, 어떤 이유에서든 나와 우리 수도회와 신학원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해 나는 어떤 장벽을 갖고 있는가? 

셋째, 나는 실제와 다른 나와 우리 수도회의 삶을 단순히 세상에 전하며, 정작 실제의 삶을 전하는 것에는 용기가 없고 게으른가?

 

예수성심 온 세상에서 사랑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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