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요한복음

20210702 7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미사 묵상 '포도주와 돌물독' - 요한 2,1 - 11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1. 7. 5. 00:05

20210702 7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미사 묵상  '포도주와 돌물독' - 요한 2,1 - 11 

 

고등학생 때 까지 저는 밖에서 운동을 하는 것 보다는 안에서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 표현으로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자주 하곤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날, 조장들 모임을 하고나서 다른 조장들은 운동장에서 피구를 하는데, 저는 혼자 스탠드에 앉아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나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런 걸 생각했던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잘 하지 못하는 운동이 무서워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나,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하던 시절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먼저 단절시키려던 마음이 거기 안에 있었다는 걸 본 것은 나이가 한 참 더 들고 나서야 였습니다. 여튼 이런 저런 책을 많이 보던 저에게 그 책들이 저에게 주는 의미를 새롭게 하는 사건을 중학교 때에 만나게 됩니다.


 

중학교 시절 저는 쉬는 시간만 되면 습관 처럼 책상 안에서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정해 놓은 창르는 없었습니다. 소설책, 무협지, 고전 등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다는 것 자체가 좋았지만, 역시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과 애써 떠들고 놀고 하는 것이 흥미롭지 않았고, 또 인기가 많은 아이들 주변을 찾아가 함께 따라다니는 것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인기가 있는 아이라 제 주변에 항상 아이들이 몰리는 아이였다면 사정은 좀 달랐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학교에 교생선생님들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국어과목의 교생선생님께서 교실에 남아 계시다가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무언가 질문을 받는 일이 드물었던 저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슬쩍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준정아, 너 숙제 낸 거 보니까 책읽는 거 좋아한다며? 데미안도 읽었고? 꿈이 소설가란 말이지? 요즘은 어떤 책 읽고있어?"

"대위의 딸요"

"대위의 딸? 그런 책 아직 니가 읽긴 어렵지 않아?" 

"그냥 읽는데요? 어려운게 있나요?"

 

선생님이 물어 온 그 "어렵지 않아?"에서 말하는 어려움이 뭔지를 알기엔 중학생인 그때의 저는 너무 어렸습니다. 하지만 그 날의 대화 이후 대위의 딸이라는 책도, 그리고 다른 모든 책도 저에게는 그 날 이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조금 더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고, "너가 쓴 글을 보면, 분명히 넌 좋은 소설가 될 수 있을것 같아!"라고 해 주신 선생님의 말씀은 저 자신 조차도 이전과 다른 것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오늘 신심미사 복음 묵상을 하는 중에 저에게 두 장면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첫 장면은 과방장은 예수님께서 물로 만드신 포도주를 받아보고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두었냐고 말하며 놀라는 장면입니다. 취할 때까지 늘상 먹는 포도주지만 예수님의 손길을 거친 포두주는 이제 예전의 그 포도주가 아니라 새롭고 더 맛나는 포도주가 됩니다. 마치 교생선생님께서 제가 해 주신 말씀이 책과 저 자신을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주셨듯이요. 예수님은 우리의 주변의 모든 익숙하고 진부한 것들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더 좋은 것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한 장면은 오늘 묵상하면서 저도 처음 생각이 미치게 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곳이, 다름 아닌 유다인들이 정결례로 쓰던 돌로 된 물독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돌물독은 유다인들의 전통과 신앙에 따라 사람들을 정화하는 데에 쓰이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의 손길이 거쳐간 이 돌물독은 이 날 유다인들의 전통과 신앙의 한계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새로운 믿음과 구원을 향해 쓰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갖고 있는 나의 전통과 신앙의 한계를 너머 사람들의 새로운 믿음과 구원을 위해 나를 달리 쓰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인생을 바꾼 한마디, 인생을 바꾼 한권의 책 등 세상에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일들이 많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변함없는 일상이지만 새로운 의미를 넣어 주시는 분, 부족한 나의 한계를 보게 하시고 그 부족함으로 더 큰 일을 하게 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리고 그 익숙함, 진부함, 그리고 부족함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도록 교회를 세우신 분이 누구이신지도 우리는 잘 압니다. 오늘 신심미사의 복음은 이것들을 다시 보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저의 별 멋없는 이 글과 여러분을 위한 작은 기도도 예수님께서 포도주와 돌물독이 과방장에게 준 놀라움을 어려분의 삶 곳곳에 심겨지게 하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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