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8 사순 5주 화요일 요한 8,21 - 30 “오늘 낯선 예수님”

20230328 사순 5주 화요일
요한 8,21 - 30 “오늘 낯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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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것은 수련 2반의 겨울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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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수도원 입회 때문에 가족들과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시기였고 그에 따른 어려움이 정점 다다르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할머니께서 힘들어지는 시기에도 돌아가시고도 부모님은 연락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동생이 몰래 걸어 온 전화로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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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찾아 뵌 이제 온기가 남지 않은 할머니 앞에서 저는 낯선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제 안에서 일어났지만 이내 슬픔은 그것들을 모두 먹어치웠고, 저는 눈물에게 제 모든 자리를 내어 주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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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내 안에 일어났던 복잡한 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고, 슬픔은 그동안 제게 굳이 알려고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 정리 되며 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어제였습니다.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이라는 책에 대한 나눔을 하는 중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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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은 더이상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노환 중인 엄마의 자살을 맞이한 아들이 엄마의 일생에 대해 쓰는 형식의 소설입니다. 여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에 태어난 엄마는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변변치 못한 일생을 살다 요양원 생활 끝에 신변을 잘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일일이 유언편지를 남기고 수면제로 삶을 마감합니다. 페터 한트케는 그 유명한 ‘관객모독’이라는 연극의 극본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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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대해 나눔을 하면서 처음에 이해 잘 공감이 안되었던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자는 요양원에서 마치 죽은 고기처럼 수치심 속에서 누워있는 엄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때까지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 한 끝에 느껴지는 아련한 통증 정도였지만, 지금 이런 엄마를 보면서 비로서 처음 나는 엄마를 제대로 보게 되었고 그 생생한 모습이 계속 나에게 남아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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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에 대해 나눔을 하다 갑자기 할머니 앞에서 오열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고, 그 때 할머니 앞에서 제 안에 일어났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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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처음으로 저의 눈과 생각으로 보고 알던 할머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인 할머니 자체로의 할머니를 만난던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사랑하는 할머니였지만 동시에 그것은 매우 낯선 할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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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을 묵상하다 똑같은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2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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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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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묵상하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꼈는지 자주 묵상하곤 합니다. 공생활 동안의 빛나는 예수님과 수난을 당하시던 절망적인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무력한 예수님. 그리고 온기가 남지 않은 예수님의 주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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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검 앞에서 제자들은 어떤 예수님을 만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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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앞에서 제가 그랬던 것 처럼, 저자가 침대 위에서 고기만 남은 것 같은 어머니 앞에서 그랬던 것 처럼, 혹시제자들도 그제야 예수님 자체로의 예수님,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제야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생생히 와 남는 그런 체험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묵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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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오늘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보면서 저 온기 없는 예수님의 주검 앞에서 나는 어떤 낯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지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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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대와 나의 체험과 나의 희망과 나의 이해를 통해 만나는 예수님이 아닌, 그저 죽음을 맞은 한 인간 앞에서 돌아보는 그 사람의 생애는 어떻게 낯설게 다가오는지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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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한 여행처럼 어쩌면 신앙도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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