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요한복음

20240104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묵상강론 요한 1,35-42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카와바타 야스나리)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4. 1. 4. 23:07

20240104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요한 1,35-42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카와바타 야스나리)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지난 해 독서모임 마지막 달 12월의 책 설국의 첫문장입니다. 이 두 문장은 일본 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의 도입부라고 칭송받고 있다고 합니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소설로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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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빠져나오면서 펼쳐지는 완전히 다른 눈의 세상, 아직 짙은 어둠의 무게에 눌려 앉은 듯 어둠 아래로 펼쳐져 있는, 아니면 어슴프레 기차의 빛이 닿는 선로로 빛나는 눈을 창 너머로 보고 있다는 상상을 하니 팔꿈치부터 어깨를 타고 서늘한 신비감이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1937년 작인 이 소설 첫 문장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일본의 시조격인 하이쿠의 운율을 알아야 한다고 해서, 중고로 원서까지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몇일 전 옛날 공부했던 기억을 살리며 드디어 읽어봤습니다. 원문은 이러했습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だ。夜の底が白くなった”

몇일을 이리저리 애써보아도 저 위의 문장보다 더 좋게 번역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저보다 훨씬 전문가 분들이 몇 십년 동안 고민한 후의 번역일테니.

검색해 보니 두 가지 번역본이 더 있었습니다. 다락원에서 나왔던 일한 대역본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끝이 하얘졌다.”

또 다른 김채수씨의 번역본은 이렇습니다.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雪国)이었다. 밤의 밑둥이 희어졌다.”

세 가지 중에 여러분은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시적인 것을 번역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 언어의 운율이나 문장의 마디마디가 가지는 분위기를 그대로 옮기기란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도 번역을 해야 할 것은 해야하고 그 때 우리는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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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선택은 번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어떤 것을 듣고 볼 때 사람들은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선택해 받아들이고 또 자신의 방식대로 선택해 전합니다. 그 선택의 과정 중에 어떤 것은 사라지고 또 어떤 것은 새롭게 더해집니다. 하나의 창조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스승의 인도로 예수님을 가까이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형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동생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같은 방식으로 오늘 우리도 누군가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만난 이를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것. 이 천년 넘도록 이어진 이 소개의 과정은 마치 하나의 번역 작업과 같습니다.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예수님을 전하는 동안 우리는 어떤 것은 잃어버리고 또 어떤 것은 새롭게 덧붙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선교에서의 이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 일반적인 번역의 과정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네 복음서가 달리 쓰여진 과정, 여러 서간, 또 오늘날의 수많은 신학서적과 강론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든 과정에는 성령께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 가톨릭은 그것을 성스러운 전통, 성전이라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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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글을 쓰고 강론을 준비하고 또 강의를 준비하는 동안 저는 이것을 계속 식별합니다.

‘이것은 누구의 생각이고 누구의 말인가? 하느님의 것인가 아니면 나의 것인가?’

명확할 때 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 때는 걱정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안드레아를 묵상하면서 다시 마음을 추스리게 됩니다. 묵상글이든 강론이든 강의든 이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예수님께 가서 만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창조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잃어버림과 새로 얻음이 성령의 인도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믿게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언제까지나 완전하지 않을 저의 삶과 글에서 예수님을 알고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 불완전한 제 삶과 글을 통해 예수님을 찾아가게 되시길 빕니다. 성령께서 여정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슬픔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은총의 나라였다. 아픔의 바닥이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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