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마태복음

20250106 주님공현대축일 후 월요일 마태 4,12-17.23-25 [ 지금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적]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5. 1. 8. 13:53

20250106 주님공현대축일 후 월요일 마태 4,12-17.23-25 

[지금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적]

 



많은 학자들이 공통되게 연구를 통해 도출한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좋은 것보다 좋지 않은 것에 대해 더 큰 영향을 받고 오래 기억한다고 합니다. 좋은 일들은 그렇지 않은 일들보다 빨리 잊힌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결과가 사실인지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조금만 우리 삶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우리는 자주 잊습니다. 함께 사는 가족이나 형제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일들에 대해서도 이러니 하느님과의 일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죠.

기도 안에서 돌아보기만 하면 금방 하느님께 받은 은혜와 감사들이 잘 떠오르지만, 하루를 사는 동안 이런 저런 일에 신경을 쓰다보면 기도 안에서 돌아보는 일을 우리는 잘 하지 못합니다. 삶에서 하느님을 체험했거나 또는 주변에서 일어났던 기적과 같은 일들에 대한 경험들은 안타깝지만 시간과 함께 흐려져 갑니다. 그래서 어쩌면 영성생활이라는 것은 반복해서 기억을 떠올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성사생활이라는 것도 결국 반복해서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니까요. 성체성사 때, 고해성사 때, 병자성사 때 그리고 다른 모든 성사는 결국 예수님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카파르나눔은 위로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약 천 오백 명 정도의 인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아마 가장 기적을 많이 일으킨 장소일 것입니다. 공생활의 본거지라고 할까요, 베드로, 안드레아, 마태오 등 제자들을 모은 곳이고, 로마 병사나 죽은 소녀 등을 죽음에서 일으킨 곳이고, 베드로의 장모나 여러 환자나 마귀 들린 어려운 이들을 치유해 주신 곳입니다. 그야말로 기적의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카파르나움은 저주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많은 기적을 일으키며 본거지라고 여길 정도로 활동하신 곳이지만 그들의 회개는 더디기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 싶으냐? 너에게 베푼 기적들을 소돔에서 보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꾸짖기까지 하시게 됩니다. 이런 카파르나움을 보면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 표징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제 삶에도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 교복을 입고 처음 고향의 금정성당 교리반에 들어간 것이 91년의 일이었습니다. 부모님 몰래 성당에 다니던 고등학생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수사신부가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말히기 힘든 많은 괴롭고 여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반대하고 괴로워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에는 송곳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지금, 예수님의 한 생애라 할 수 있는 시간인, 33년이 지난 2024년에 어머니께서 바로 그 금정성당 교리반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하면 고등학교부터의 저의 사정을 잘 아는 분일수록 더 크게 놀랍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외칩니다. 이건 기적이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집에 잠시 들른 어느날 아침에 어머니께서 저를 깨우시더니 종이 한 장을 내미시며 “야야 일어나 봐라 이게 도대체 나는 모르겠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고? 다들 노래하고 뭐 하는데 내만 어디 하는 지모르고 멍하니 앉아있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묵주기도 하는 법”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내내 저는 어머니에게 묵주기도 하는 방법을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 드렸습니다. 오후에는 또 생전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걸 잘 하시지 않았는데 작은 상 앞에 앉아서 뭘 쓰고 계시는 겁니다. 뭐 하세요라고 여쭤봤더니, “아이고 이게 교리반 숙젠데 몇 달 동안 하나도 안 했더니 꼭 해야 된 데서 내기 지금 발등에 불 떨어졌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책표지에 성경 필사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놀라서 자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노트를 죽 넘겨 봤더니 다른 글씨체가 보여서 아니 숙제를 다른 사람이 해주면 어떡해요 하며 누구나고 물었더니, “너거 아버지 아이가” 하시는 겁니다. 저는 정말 놀라서 까무러치는 줄 알았습니다. 이게 지금 너무 제게는 비현실적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수도원와서 종신하고 서품 받는 것이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지금 제 삶에서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저는 자꾸 슬퍼지기도 합니다. 제가 오늘 복음의 카파르나움 사람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사와 은총의 기적 속에서도 제대로 회개하고 있는가,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제대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자꾸 괴로워지고 슬퍼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것임을, 이 시기의 체험이 내 기억 너머 제 영혼에 새겨지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이 힘으로 저는 더 성찰하고 더 노력하고 자신이 때때로 부끄럽지만 묵묵히 수도생활을 해 갈 것을 압니다. 

제 삶의 기적들이 여러분 삶의 기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삶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여러분 삶의 하느님 체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간 저의 영혼과 함께 여러분의 영혼에도 하느님의 선물이 새겨지고 있기를,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묵묵한 힘이 되기를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