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1 연중 6주 토요일 묵상강론 마태 16,13-19 [신앙에 있어 아는 것은 반드시 사랑으로 변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가톨릭 교회의 반석이자 교도권의 중심인 교황의 역할이 시작되는 순간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순간에 베드로는 이 역할이 어떤 것인지 또 어떤 희생과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하는 일인지 몰랐를 겁니다. 아직 예수님은 칭송받고 존경받고 있으며, 자기들은 예수님 근처에서 빛나는 미래를 꿈꾸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렇다는 사실은 이어지는 21절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교회의 반석이 될 것이며 하늘나라의 열쇠를 준다고 하신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21절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수 사흗날에 되살아나야 한다고 랄잊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반박을 했다가 예수님의 꾸지람을 듣고 맙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면서요.
이 장면들에서 우리는 두 가지 대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살과 피가 알려준 것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것입니다. 살과 피는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알려줍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과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이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은 그런 사람의 생각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자들 같은 사람이며 엄청난 일을 해 줄 것이라는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의 생각은 그리스도는 고난과 죽음을 겪을 것이라는 하느님의 생각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이 두 대비는 저로 하여금 최근에 발표된 회칙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중 한 문장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회칙 26장은 보나벤투라 성인이 한 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청해야 할 것은 빛이 아니라 타오르는 불꽃이다. 신앙은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지성 안에 있으며, 신앙에 있어 아는 것은 반드시 애정으로 곧 사랑으로 변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언자로 엄청난 일을 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에서 저는 눈부신 빛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과 죽음을 겪어갈 결연한 그리스도의 모습에서는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따라야 할 예수님은 눈부시게 빛나는 승리의 예수님이 아니라, 타오로는 불꽃으로 의연한 패배의 예수님이어야 한다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묵상하게 됩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이러한 믿음과 신앙의 지식이 진정한 것이라면, 이것은 반드시 애정으로 곧 사랑으로 변하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성인이 이 이야기는 제가 한 묵상과 깨달음이 참된 것인지 점검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공해 줍니다. 나의 묵상이 끝났을 때 또는 계속해 가는 내 마음이 애정과 사랑으로 변하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지켜보는 일은, 묵상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살과 피의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느님의 생각인지 점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꼭대기 돔 안쪽에는 오늘 복음 말씀 중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라는 말씀이 라틴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또 이 성당의 바닥 바로 아래에는 실제로 베드로 성인의 무덤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성경 말씀이 그대로 현실적인 실제로도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이 실행되는 것에는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저는 보나벤투라성인의 말과 함께 복음을 묵상하며, 나의 묵상과 지식과 실행이 나의 마음을 애정과 사랑으로 변하게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여 러분의 신앙도 여러분의 마음을 애정과 사랑으로 변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