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안에서 가을을 본다는 것 ]
20250825 연중 21주 월 묵상강론 마태 23,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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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풀 꺾인 듯한 여름이지만 여전히 한낮의 버스 정류소는 한증막입니다. 버스가 오기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고, 손수건과 속옷은 점점 땀으로 젖어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고양이 바람이 얼굴을 스쳐 갔습니다. 간간이 오는 바람이 고마워 바라봤습니다. 강렬한 햇볕이 비추고 있는 도로, 그리고 조금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나무 아래의 인도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인도 위로 나뭇잎들이 몇몇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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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풍경에 한참 물끄러미 인도를 내려봤습니다. 다음 바람이 스쳐 갈 때에 몇몇 떨어지는 잎들을 따라 인도를 보고서야, 가장자리가 보일 듯 말 듯 갈색으로 물들어 있는 잎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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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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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잠시 여름인지 가을인지 헷갈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묵상하며 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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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많은 문제들은 바로 그 순간처럼 무엇이라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인간 사회의 법과 기준에는 빈틈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것이 그 빈틈에 더 큰 공간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완고해집니다. 위선자가 되고 눈먼 인도자가 됩니다. 가을을 느끼는 사람에게 아직 여름이라고 강요하거나, 아직 여름볕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긴 옷을 입으라고 하기도 합니다. 법과 기준의 빈틈은 법과 기준으로 매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곤 합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 저는 세상을 법과 기준의 틀에서만 보게 된다는 겁니다. 그럴 때 항상 저는 더 큰 문제와 갈등에 이르게 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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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는 지혜는 이 틈을 무엇으로 메꾸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삶의 아름다움은 이 틈을 어떻게 메꾸어 가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여름 속에 시작되는 가을을 알아채는 문제이고, 시련 속에 희망을 보는 문제이며, 이웃 안에서 하느님 얼굴을 발견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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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안 들고,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자기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문제입니다. 지금 이 시기 조금씩 가을을 알아채듯, 오늘 하루 우리 자신과 세상 속에서 조금씩 희망을 보고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세상도 희망과 하느님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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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강론 #가톨릭 #수도회 #놀이터에서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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