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버린다는 것은 내 습관적인 반응을 버린다는 것 ]
20250808 연중 18주 금 성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묵상강론 마태 16,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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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어떤 일에 매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찾아옵니다. 어떤 때는 그 일에 압도되어 자신이나 주변 상황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일을 받아들이는 일도 내 삶의 습관에 따라 하게 됩니다. 평소의 습관에 따라 그 일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자기 삶에 기록합니다. 그 일에 더 많이 매여있을수록 내 습관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러면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스스로에게 더 상처를 주거나 다른 사람들을 오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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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린다는 일은 내 상각이나 판단 같은 것을 멈추고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그 외에도 내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습관적인 태도를 버린다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학창 시절 동안 누군가의 생일잔치에 가서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습관적으로 아 이 사람은 잘 못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고 저의 습관적인 반응이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동안 이런 습관을 고치게 되었는데 이는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했었습니다. 다른 일이 있어서 사람들이 못 왔을 수도 있고, 애초에 생일잔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는가가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하는데 말이죠. 이것을 무의식 안에서까지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많은 반복적인 연습과 시간이 필요했었습니다. 또 인사를 했는데 누가 퉁명스럽게 대하면 온종일 내가 그 사람에게 무얼 잘못했나 걱정하며 어떻게 관계를 회복하지 하고 전전 긍긍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오고서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이런 생각에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제 내면 어딘가 남아있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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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여러 습관적인 반응들을 무수히 갖고 살고 있습니다. 습관대로 어떤 일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그래서 편하고 안전하게 느끼고 그리고 보통은 남 탓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는 방식으로 습관을 만들어 가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복음과 함께 도전을 만납니다. 어떤 습관적인 반응을 버리려고 하면, 당장 우리는 불편함과 불안과 내 탓을 만나게 됩니다. 이건 엄청난 에너지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때는 목숨을 버리는 일과도 같이 어렵습니다. 내 삶에 갑자기 새로운 불편함과 불안과 내 탓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제 십자가를 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차마 지지 못하고 있던 십자가를 나를 버림으로써 자연히 지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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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너무 어려워 내가 과연 해 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미 우리 삶에서 이런 도전들을 이미 끊임없이 해 오고 있습니다. 강제로 말입니다. 누구를 통해서일까요? 맞습니다. 내 삶의 시련,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의 사람, 부끄럽고 수치스런 나의 실수들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을 겪고 또 극복해 나가면서 기도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하느님께로 성장해 갑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이미 강제로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는 일을 계속해서 해오고 있습니다. 마치 시몬같이 말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으로 아마 인류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기억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는지를 한 번 봅시다. 그는 단지 그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로마 병사가 그를 부른 것입니다. 요즘 말로 "갑자기" 인 거죠. 뜻하지 않게 또 원하지 않게 그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이 된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우리 삶에서 이렇게 뜻하지 않게 또 원하지 않게 십자가를 지게 되는 일을 계속해 오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만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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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음과 함께 내가 어떤 일에 습관적으로 하는 반응들은 어떤 건지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불편함과 불안 그리고 내 탓을 하는 것이 두려워서 정말 해야 할 일들을 못 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도 살펴보려고 합니다. 나를 조금 버리는 연습입니다. 나를 버리는 일은 정말 목숨을 버리는 것처럼 힘든 일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멍에는 가볍다는 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또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이웃과 형제들도 기억하며 하나씩 하나씩 찾아보는 노력을 해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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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강론 #가톨릭 #수도회 #놀이터에서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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