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년 06월 21일 연중 12주일 - 어머니 육감의 비밀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6. 21. 18:27

 

 

오늘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신자가 아니셨던 부모님은 제가 성당에 가지 못하게 하셨고 저는 내내 부모님 몰래 성당에 다녀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부모님에게 성당을 다니는 것을 참 다양한 상황에서 들키곤 했습니다. 한 번은 방학 때였는데 이상하게 성당에 간 날이면 저녁에 어머니께서 귀신같이 아시고 '니 또 성당가제?' 물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정말 자식에게 대해 육감같은 것이 있어서 본능적으로 내 무얼 하는지 아시는가 하는 생각 밖에, 너무 신기했고 달리 어떻게 들키게 되었는지 그 외의 원인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때 처럼 학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성당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 때 저희 집은 5층 짜리 단독 아파트의 5층에 있었는데, 마당을 나서서 골목을 돌려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 고개를 돌려 집을 올려다 봤는데, 어머니가 베란다에 몰래 기대어 저를 내려보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학교로 가는 길은 오른 쪽이고, 성당으로 가는 길은 왼쪽이었는데 저의 몸은 이미 왼쪽으로 거의 돌아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급히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학교 쪽으로 갔습니다. 그제야 어머니의 육감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거였구나.." 그래서 그 날부터 저는 일부러 더 먼 길을 돌아 성당으로 가야 했습니다. 

 

저희 동네에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고 어머니들도 다 친하셨습니다. 겨울 방학이 되자 어머니들은 우리들이 새로 생긴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도록 한달 치 회비를 끊어주셨습니다. 그 독서실은 새로 생긴 좋은 시설에 관리아저씨가 학생들이 밖을 잘 못나가게 관리하시고 엄격히 공부를 시키는 곳이었습니다. 각 개인마다 출퇴근 표가 있는데 독서실에 갈때 와 올때 기계에다 넣으면 거기 시간이 찍혀서 얼마나 공부했는지 알 수 있는 시설도 마련해 놓은 당시로서는 신식 독서실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독서실에 가서 공부했지만, 저는 처음 3일만 갔다가 가지 않았습니다. 한 달 뒤가 성탄이었고 저는 성당에서 성탄제 댄스 공연 팀에 있었기 때문에 매일 연습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12월은 거의 매일 온 종일 성당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성탄제 준비를 하다가 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성탄 몇 일 전에 또 집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제가 성당 간다는 것을 또 들킨 것이었습니다. 엄청 혼나면서 '어떻게 알았지 정말 기밀을 철저히 유지했는데' 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독서실은 매월 말이 되면, 각 학생들의 출퇴근 카드를 부모님들에게 우편으로 보내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실컷 비싼 돈을 내신 부모님이 받은 저의 카드에는 처음 딱 3일만 찍혀있었던 겁니다. 나중에 직접 보고 저조차 어이가 없을 정도였으니 부모님이 받으셨을 충격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몰래몰래 다니던 어느 날 저는 또 들켜서 엄청 혼나고 있었고 그 때에 부모님께서 제게 이렇게 물어오셨습니다.

“니는 그래 니가 그렇게 좋다고 하는 그 하느님이라는 걸 더 사랑하나, 아니면 니를 낳아 준 니 부모를 더 사랑하나?” 

 

저는 어떻게 대답했어야 했을까요?

한참 망설인 끝에 저는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요"

 

당연히 부모님 격노하셨고, 뒤늦게 “하느님하고 사람하고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드리는 저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으셨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했던 저의 대답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그 때 저의 마음에는 괴로움과 두려움 또 아픔 같은 것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지나 저는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또 종신서원을 하고 서품을 받았습니다. 수도생활을 하는 지금도 저는 그런 상황을 많이 만납니다.

 

 

우리는 살다가 지금 닥친 상황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거나, 또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나를 괴롭게 하거나 또 두렵게 하는 경우를 종종 만납니다. 그런 때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정말 제대로 선택한 것인지, 또는 나의 선택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간혹 그런 상황이 계속되는 때면 내가 정말 제대로 된 신앙인인지 두렵기도 하고, 내가 천국에서 하느님 앞에 설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지난 경험을 통해 체험한 하나의 믿음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느님의 뜻을 잘 모르겠고, 나의 선택이 합당한 것인지 모른다 해도, 하느님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시고, 또 당신께서 마련해 놓으신 길로 나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두려워 하지 마라고 하시며 당신을 안다고 증언하면 예수님도 하느님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시며 수많은 참새보다 우리가 더 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가끔 틀릴 수도 있고, 가끔 넘어질 수도 있고, 또 가끔은 하느님을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변함없이 넘치고 또 절대 멈추지 않으십니다.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저에게 이루신 일 처럼, 당신의 길로 언제나 우리 모두를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난 금요일 예수성심대축일을 지냈습니다. 이번 주간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넘치도록 불타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멈추지 말고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약함과 아픔을 예수성심의 사랑에 봉헌합시다. 그리고 두려움없이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합시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길로 언제나 끊임없이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믿음을 가집시다.

 

 

저도 예수성심의 사랑, 그 믿음 안에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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