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10104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묵상 -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이루는 큰 세상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1. 1. 5. 16:10

20210104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묵상 -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이루는 큰 세상 -

 

 

 

" 와 ~ 그게 다 어디서 나왔노?"

 

지나가던 건너 방 신부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으며 제 방 앞에 와 섰습니다.

 

침대와 책상 사이의 좁은 공간에 앉아 있는 제 주위에는 이런 저런 작은 물건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러게요...어느 틈에..."

 

멋쩍게 웃으며 저는 괜시리 손에 쥐고 있던 박스를 한 번 툭 쳤습니다. 일 년도 채 안된 이 곳 생활에서 어느 틈엔가 제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녀석들입니다.

 

서품식 때 받은 선물들이며, 새로 온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비한다는 마음이 쟁겨 둔 물건들이며, 나중에 정리하자고 놓아 두었던 것들이 모두 합심해서 제게 생각보다 많은 수고를 요구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일 년이 다 가도록 한 곳의 방에서만 머루른 건 수도원 입회 후 십 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짐이 조금 쌓인 것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라도 이렇게 스스로에게 해 봅니다. 작년까지 신학생수사로 있을 때에는 일 년에 꼭 네 번 제비를 뽑아 서로 방을 바꾸었습니다. 방이라고 해봐야 침대와 책상 사이로 사람 하나 누울 정도의 공간이지만, 서로 짐을 다 덜어 내어 청소하고 서로의 방으로 옮겨 가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 해도 서로 모두 다 옮기는 데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옷장 서랍에 든 옷들을 일일이 옮기지 않고 서랍 채로 옮겨가는 치트 키를 쓰면 시간은 아주 조금이지만 더 단축 되고요.

 

그런데 이렇게 방을 정리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방의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헝클고 있는 것은 눈에 띄는 큰 것들이 아니라 눈의 잘 띄지 않는 작고 소소한 것들이라는 겁니다. 어제 정리하던 제 방에 널어 놓은 것들도 대부분 그랬습니다.

 

버림과 소유의 경계 선에서 걷다 문득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도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들이라는 깨달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같은 모양으로 헝클어져 있던 저의 마음과 함께 물건들을 정리를 하는 중에 저는 이런 작은 것들이 커다란 힘을 갖고 있다는 역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은 것들은 제 방과 마음을 쉽게 헝클어 버리기도 했지만, 반대로 어떤 큰 의미있는 일들을 제 삶에서 쉽게 이루어내곤 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미소나, 소소한 배려, 또는 툭 건낸 말이 큰 삶의 위로가 되었던 경험 같은 것들요. 그리고 그런 일은 정말 하느님의 일인 것 같습니다. 방을 정리하던 저에게 오늘 복음은 그래서 그런 작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복음은 작은 것들로 시작해서 작은 것들로 마무리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내어 놓은 작은 것들로 기적을 행하십니다.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작은 것이지만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배부르게 됩니다. 더구나 먹고 남은 작은 조각들 조차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채웁니다. 

 

기적이 시작된 그 작은 것들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도 저의 시선을 붙듭니다. 그것들이 나온 곳은 제자들로부터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가진 것을 내어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어 놓은 그 작은 것들로 큰 기적을 이루어 내십니다.

 


 

제자들에 내어 놓은 작은 것, 그것이 큰 기적이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복음 묵상은 작은 것들로 헝클어 져 있던 저의 마음에 조금 더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내가 별나게 가진 것이 없고, 나 스스로가 너무 작은 존재 같아도, 내가 가진 것을 내어 놓는 다면 하느님은 그런 작은 것들로 큰 기적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걸 잊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있는 작은 것들의 가능성도 오늘 다시 바라보게 해 주셨습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이루는 큰 세상,  하느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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