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마르코복음

20211107 연중 32주 주일 묵상강론 마르코 12,38 - 44『 회사를 그만둔다고 마음먹으니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1. 11. 8. 00:42

20211107 연중 32주 주일 묵상강론  마르코 12,38 - 44

『 회사를 그만둔다고 마음먹으니 』

 

신학원에서 제가 동반하고 있는 수도회 부제님의 사제서품이 허가되었다는 공문이 얼마 전 로마에 있는 수도회 총원으로부터 왔습니다. 내년 1월에 이곳 강화도 수도회 성당에서 있게 될 서품식 일정과 집전해 주실 주교님도 오늘 결정 되었습니다. 곧 이 부제님도 10년이 다 되는 양성기를 마치고 이곳 신학원을 떠나게 됩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저랑 둘이 미사를 드렸습니다. 매년 이맘 때는 신학교 부제반 성지순례가 있는데 코로노 때문에 올해는 제주도 졸업여행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출발하는 날이었고 출발 집합이 이른 시간이어서 따로 아침에 둘이서만 미사를 드리게 되었던 겁니다. 


긴 시간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오랜시간 함께 살아온 이 후배 수사님 만을 위한 짧은 강론을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작은 돈이지만 생활비의 전부인 렙톤 두 닢이라는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크게 감동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저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라며 칭찬하십니다. 매번 이 복음을 접할 때 마다 저는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봉헌할 수 있는가' 스스로 물어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동시에 부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과부는 어떻게 미래에 대한 걱정을 놓고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도 됩니다. 그렇게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 얼마 전 읽었던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마음 먹으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는 식의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읽는 순간 속에서 '정말 그래'라는 소리가 들리며 잊었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몇 해가 걸린 오랜 고민 끝에 맞은 그날 밤, 또한 그만큼이나 많은 통화버튼과 종료버튼 누르기의 반복 끝에 울리던 서너 번의 연결음도, 꼭 그만큼 길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생각해보자며 내일 회사에서 얘기하자는 과장님의 말씀 뒤로 종료 버튼을 누르고 맞던, 그 잠시의 어둠 속 적막감은 처음 겪어보는 묘한 것이었습니다. 참 많은 감정이 한 번에 다가왔습니다.


그 날 이후 회사에서 지냈던 시간들도 그 날 밤의 적막감 만큼이나 참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미워하던 다른 부서 과장님도, 매일 내쉬는 모든 숨을 한 숨으로 쉬게 만들었던 과중한 업무도, 츨근해서 의자에 앉자마자 마치지 못한 일에 등 뒤로 쏟아지는 과장님의 화살같은 눈초리도, 모두 제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달라디는 겁니다. 그렇게 밉게 보이지도 않고, 숨도 제대로 쉬게 되고, 또 등 뒤로 오는 화살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아지는 거예요. 놀라웠습니다. 저의 세상이 하룻밤 새 달라졌습니다. 너무나 가벼워 졌습니다. 해방된 책임감, 새로운 삶이 주는 희망이 주는 가벼움도 물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저는 그 가벼움 안에서 분명히 알게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생각보다 많은 걱정과, 욕심, 그리고 과거의 상처들에 과도하게 스스로 매여 있었다는 것을요. 다들 비슷한 경험 하신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시간과 함께 그 때의 체험을 점점 잊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기억은 저를 죽음에 대해 묵상으로 안내 했습니다. 내 삶이 곧 끝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예전에 느낀 그런 가벼움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제가 매일 참되게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며 산다면 매일 매일 그런 가벼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부활과 죽음의 삶이 주는 가벼움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로 하여금 가진 것을 모두 봉헌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이번 졸업여행과 이후의 시간들이, 이제 신학원 생활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부제님에게도 그 마지막이 주는 참된 죽음과 부활의 가벼움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며 강론을 마쳤습니다. 


이제 곧 맞이할 죽음 앞에서 내게 찾아오는 것이 원한과 아쉬움과 두려움이라면 참 슬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과 부활을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죽음과 부활도 이 세상을 바라보게 하신 예수님의 삶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고 다시 느낍니다. 또 하나의 죽음과 부활의 시간을 가지는 우리 부제님을 위해서도, 또 좋은 체험의 선물을 받았음에도 잊기를 잘하는 저를 위해서도, 또 여러분의 매일에 죽음과 부활과 그것이 주는 가벼움이 가득하시기를 위해서도 우리 모두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무일도 끝기도의 마침기도로 달리 다가옵니다. 그 기도로 마무리할까 해요. 전능하신 하느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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