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마르코복음

20220121 연중 2주 금요일 묵상강론 마르 3,13-19 "관계 안에서의 행동"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2. 1. 23. 11:47

20220121 연중 2주 금요일 묵상강론 마르 3,13-19 "관계 안에서의 행동"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까이 두고 많은 권한을 주며 함께 지내실 열 두 제자들을 뽑으시는 장면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그 때 그 때 나의 상태에 따라 여러 다른 구절들을 중심으로 묵상하게 됩니다. 막 뭔가 시작하는 신입사원의 호기로움을 묵상하게 되기도 하고, 뽑히지 못한 이들의 서운함을 묵상하게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골라서 뽑아야 하는 어려움을 묵상하게 되기도 하고, 뽑혔다는 데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묵상하게 되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부분이 마음에 더 들어오시는지요. 그것이 지금 내가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들입니다. 오늘 저는 저의 관계 안에서 행동에 대해 묵상하며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가를 할 때 순수한 하나의 마음만으로 임하는 것이 사실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내면에 얽혀있는 자신의 취약한 부분들이나 연관된 다른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왜곡되어 대응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순수하게 좋은 의도로 일을 한다고 생각 하지만, 보통 우리 마음은 어떤 형태의 보상에 대한 기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에 섞여 있는 좋은 의도와 개인적인 부족한 욕망 중에서 미성숙한 나의 욕망만을 꼬집어 계속 비난 한다면, 나는 인정하기도 어렵고 큰 상처만으로 남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저도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가족이든 수도회든 직장이든 공동체는 와해될 수 밖에 없고,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가 상처 속에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날 회사가 1년 ~ 2차 신입 사원들에게 한 달의 기간과 또 그 기간 안에 한번 전국에서 모여 세미나를 할 기회를 주며, 신입사원의 참신한 눈으로 회사의 개선할 점들을 정리해서 보고 하라는 프로젝트가 주어졌습니다. 몇가지 이유로 제가 리더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평소의 업무를 그대로 다 하면서 추가로 해야하는 이 일에 짜증도 났지만 신입사원의 애사심과 열정으로 회사와 우리 모두를 위해 잘 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처음부터 결과를 얻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경력직도 아닌 1 ~ 2년차 신입사원들이 회사의 깊은 문제를 파악하는 일도 어려웠고, 설사 파악했다고 한들 옆에서 함께 일하는 선배들에 대한 비판이 될터라 아무도 편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 해 가면서 정작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결과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말고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같은 사업장의 친하게 지내던 손 아래 동기 중 하나가 저에게 

" 솔직히 우리가 열심히 할 필요가 없죠, 어짜피 결과가 좋아봐야 리더인 형한테 보상이 갈 껀데 우리가 왜 열심히 하겠어요. 형도 솔직히 윗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우리 이용하고 있는 거 잖아요."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회사와 우리라는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었고, 보상보다는 오히려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 나에게 올 평가에 대한 걱정이 앞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속이 뒤틀릴 정도로 억울하고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곧 화해했고, 그 프로젝트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이 났습니다. 성과는 커녕, 이런 상투적인 소리를 들으려고 회사에서 시간과 돈과 인력을 투자했냐는 핀잔을 제가 대표로 듣고 말았습니다. 그 사건은 저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주었으므로 시간이 흐르고난 뒤에도 자주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자신에게 조금더 솔직지는 법을 알아갈수록 그 손 아래 신입사원의 말도 사실은 맞는 것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실제로 제 안에는 이 일을 잘 해서 위로부터는 내가 능력 있고 리더십 있는 사람이라는, 아래로부터는 의지할 수 있고 따르고 싶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싶다는 욕구가 엄청 컸었다는 것을 발견해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점점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지금 내 안의 숨겨진 욕망에 대해 조금은 더 잘 보게 되고 이전보다 조금은 더 쉽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에 대한 비판에 대한 분노, 억울함, 경멸의 감정이 일었다가 이후에 자기성찰과 수용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수도생활 내내 그리고 바로 오늘 아침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 중에 만약 제가 미성숙한 저의 욕망을 계속 칠타하기만을 계속한다면 저는 아마 제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제 마음은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타인의 마음 안에 있는 미성숙한 그의 욕망 만을 계속 질타한다면 저는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도 평화가 없을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 안의 미성숙한 욕망 만이 아니라 함께 섞여있는 좋은 마음들을 더 많이 발견하고 더 많이 칭찬할 줄 알 때, 우리는 내적인 평화와 외적인 평화를 함께 이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름아닌 타인 안에 있는 예수님을 발견하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뽑힌 열 두 제자들도 서로의 관계 안에서 저와 같이 어려운 일들을 겪었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쉽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은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의 마음에 섞여 있는 좋은 마음과 미성숙한 욕망 중에 좋은 의도를 조금 더 많이 바라봐 주고,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나도 하느님께 뽑힌 사람이고 그들도 하느님께 뽑힌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