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마르코복음

20220226 연중 7주 토요일 묵상강론 마르 10,13-16 "성장과 자유로움 사이"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2. 2. 26. 00:10

20220226 연중 7주 토요일 마르 10,13-16 "성장과 자유로움 사이"


제가 중고로 샀던 노트북 모델에 키보드에 문제가 있을 때는 무상으로 교체해준다는 기사를 처음 본 것은 1년 전 쯤이었습니다. 딱히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괜히 속으로 '아깝다 새 판으로 교체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가 사용하는 이어폰도 무상교체 대상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얼마 후 그 문제 증상이 제 이어폰에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새 제품으로 바꾸게 되어 좋은 기분에 혹시나 하고 노트북도 함께 가져갔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친절한 직원 분의 너그러운 판단으로 노트북도 무상교체 대상으로 인정받게 되었을 뿐더라 상판 키보드 배터리까지 모두 무상교체 대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몇 년 쓴 노트북을 거의 새 노트북으로 교체받게 되는 셈이었지요. 꺄호! 그 직원 분의 너그러운 판단에 감사하는 마음과 노트북도 가져오길 잘했다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

그런데 다음 날 저녁 서비스 센터로부터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제 노트북을 열었는데 이상 상황이 있어서 통화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했다가, 맙소사 저는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고객님, 노트북을 열었는데 안에 커피가 있어요."
"커피요? 노트북 안에 어떻게 커피가 들어가요?"
"아, 커피 방울들이 안에 있는데, 보드랑 램이랑 팬에까지 다 퍼져 있네요."
"네? 커피가 들어간지 얼마나 되어 보여요?"
"꽤 오래 된 것 같아요. 작은 방울 들로 여기저기 퍼져서 굳어 있어요."
"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커피가 들어가 있어서 무상 교체는 대상이 안되세요, 유상으로 교체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럼 비용은 얼마나 드나요?"
"네. 키보드가 ... , 팬이 ... , 뭐가 ... , 뭐가 ... 해서 다 합쳐서 ..... 정도 듭니다."
"네??? 그럼 새로 사는 것과 별로 차이가..."
"네. 만약 이게 제 노트북이라면 그냥 이대로 노트북이 죽을 때까지 계속 쓰시다가 나중에 구입할 것 같아요.. 우선 가능한데로 최대한 세척 해 드렸어요."

결국 그냥 닫아 달라고 했습니다. 아직은 뭐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으니까요. 직원 분의 친절참에 또 한번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중고품을 판 사람인지 저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흘린 커피 한 잔 때문에 무상으로 거의 세 제품으로 교체 받을 뻔 했다가 거의 신제품 가격의 수리비가 들게 생긴거예요.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틀 동안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간 셈이었어요. 그리고 전화를 끊고나서 속으로 외쳤습니다.

"이제 노트북 근처에는 빵 부스러기 물 한 방울도 절대절대절대 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

이렇게 길게 노트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다짐을 하던 저의 모습이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다짐 이후 저에게는 앞으로 노트북을 쓸 때마다 매우 신경 써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묵상 중에 이런 다짐들이 제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하나 하나 늘어왔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을 돌아보니 이런 다짐들이 저를 더 성숙하게도 해 왔지만, 동시에 저를 더 제한하기도 해 왔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잘 성숙해 갈 때는 저를 제한하던 그 다짐들로부터 자유로워져 갔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는 그 다짐들에 구속되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숙이라는 빛이 드리운 그림자의 자리에는 그런 다짐들에 구속되어 있는 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건 성숙해 가는 여정 중에 꼭 만나며 갈 수 밖에 없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

어린이와 같이 하늘나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어른이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과 어린이들이 다가가는 것에는 어떤 차이들이 있을까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묵상 중에 노트북을 보며 했던 저의 다짐을 떠올리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어린이들은 이렇게 자신을 성숙하게 하지만 동시에 구속하게도 하는 다짐들이 아직은 많지 않아서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이미 성인이 된 저는 그런 어린이의 자유로움을 이젠 갖지 못하겠지만, 오늘 하루 그동안 성장하며 해온 다짐 중에 내가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들로부터 나는 얼마나 자유롭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다가가는 일에는 때로는 성장보다 자유로움이 먼저 필요한 것을 아닐까 하고 묵상하게도 됩니다.





#가톨릭 #묵상 #기도 #예수성심 #복음 #말씀 #독서 #사랑 #선교 #십자가 #수도회 #천주교 #강론 #매일미사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https://mooksang.tistory.com
https://blog.naver.com/richardms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