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마태복음

20220608 연중 10주 수요일 묵상강론 마태 5,17-19 "계명의 완성은 사랑과 기도"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2. 6. 8. 15:17

20220608 연중 10주 수요일 묵상강론
마태 5,17-19 "계명의 완성은 사랑과 기도"

요즘 스웨덴게이트 때문에 인터넷이며 뉴스에서 난리입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한 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웨덴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밥 때가 되자 자기더러 기다리라고 하고는 자기 식구들끼리 밥을 먹더라는 경험담을 누가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스웨덴 친구집에 가서 놀다 자게 되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친구가 아래층에 내려갔더니 한참 올라오지 않길래 내려가 보았더니, 밥 다 먹어간다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더라는 댓글이 달린 겁니다. 그래서 요즘 이런 스웨덴의 문화에 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스웨덴이 그렇게 인정이 없는 나라였냐며 논란이 커지자 그러자 주한 스웨덴 대사관까지 나서서 해명하는 듯한 글을 올리고, 스웨덴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정말이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본 그들의 해명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스웨덴에 그런 문화가 있기는 한데 그것은 상대방의 사적영역을 존중하는 목적으로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것이고, 오히려 스웨덴에서는 손님을 왕으로 여기며, 피카라는 문화가 있어 언제 어디서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손님을 내팽개치는 냉정한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개인주의에 따라 상대방을 존중하는 배려의 문화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겉 모습만 보고 간단히 판단해서는 안되는 또 하나의 예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법이나 규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과 규칙은 그것을 지키는 것 보다 왜 그것을 지켜야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지키는 것만 생각하면, 그것을 뭔가 부정적인 것이나 냉정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고 맙니다. 왜 그런 법이나 규칙이 생겼나 하는 것 말입니다.

저의 서품 상본 뒷면에 그린 그림에 옆에는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라는 글귀를 넣었었습니다. 서품을 준비하는 동안 계명을 완성한 것은 예수님의 삶이며 그것은 사랑이라는 묵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성심의 마음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이나 계명이 사람 잡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그것이 결국 사랑을 위한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에 내가 스스로 동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사랑과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다. 시편 119장은 하느님 계명에 대한 사랑과 기쁨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특히 97절은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제가 당신의 가르침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온 종일 그것을 묵상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나 특히 제가 수도자로서 지켜야 할 수도서원들 역시 마찬가입니다. 이것들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단순한 구속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내가 기도하고 묵상해야 할 사랑과 기쁨같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은 그렇게 예수님의 사랑과 기쁨으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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