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루카복음

20220619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혈대축일 루카 9,11-17 "희미해지는 기억 그리고성체성혈 속의 탄생과 부활과 승천"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2. 6. 18. 14:53

20220619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혈대축일
루카 9,11-17 "희미해지는 기억 그리고성체성혈 속의 탄생과 부활과 승천"




요즘은 커텐을 조금 걷어두고 잡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창을 지나 들어오는 따뜻한 아침 햇살에 잠을 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왠지 핸드폰의 알람소리에 눈을 뜨기보다는 햇볕의 밝음에 눈을 뜨는 것이 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조금 덜 가혹한 아침눈뜨기를 누리던 호사도 그 짧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만 뜨거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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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시절 얼음 밭에서 모기처럼 군화를 뚫고 올라오는 냉기에 발을 동동 구르는 때면 자주 요맘때의 뜨거운 여름 날의 고통을 떠올리려 했습니다. 극과 극의 고통을 함께 생각하면 에이는 추위의 고통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언제나 효과는 처음 잠깐 뿐. 고작 반 년 전의 고통이었지만 몸은 생각보다 잘 기억하고 있질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의 추위 앞에 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청춘의 기억도 그렇습니다. 열정을 불태우던 정의감도 심장을 터지게 하던 뜀박질도, 저녁 어스름에 떠올려보는 한 낮의 볕처럼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아도 어딘가로 사라져 없었습니다. 몸은 그저 당장 느끼고 있는 피로함과 유약함 앞에 떨고 있습니다.

하느님 체험도 다르지 않습니다. 뜨거운 눈물과 감동의 기억도 온통 가슴을 채우던 하느님의 음성도, 지난 계절의 기억처럼 생각보다 빨리 희미해져 갑니다. 어느새 몸은 당장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 앞에 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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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통의 크기를 정하는 것이 내가 아니듯, 지난 기억의 선명함 정하는 것도 내가 아니라는 것이 하느님의 선물일까 아님 하느님의 벌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성체 성혈을 끊임없이 탄생시키는 성체성사는 틀림없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특히 저처럼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요.

사도들에게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시간이 지나서는 오늘 복음에서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감동과 놀라움의 기억이 희미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한 두 명은 저처럼 기억력이 좋지 않은 분들이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사도들은 계속해서 빵을 쪼개어 나누며 그 날의 감동과 놀라움의 기억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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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돌아가시고, 계절이 지나고, 해가 지나고, 생이 지나갈 때까지 제자들은 성체와 성혈의 탄생과 나눔 속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이야기들과 예수님 때문에 겪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고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 되새김과 나눔 속에 성탄과 부활과 승천은 매일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늘 우리가 함께 하는 성체성사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는 자주 당장 맞닥뜨린 삶의 무게와 고통에 몸을 움츠리고 좋았던 날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애씁니다. 대부분 성공적이진 않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더 성체성사는 다른 무엇보다 더 큰 힘이 됩니다. 내 눈 앞에, 내 손 위에, 내 마음 안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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