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루카복음

20220717 연중 16주일 묵상강론 루카10,38-42 “관상과 활동의 구분 전에 해야 할 것”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2. 7. 19. 21:34


20220717 연중 16주일 묵상강론 루카10,38-42 “관상과 활동의 구분 전에 해야 할 것”

 

수련기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언가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일을 시작 하자고 제가 계속 제안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은채 시간만 갔습니다. 결국 마감일에 닥쳐서야 저의 독촉으로 함께 움직여서 부랴부랴 되는 만큼만 준비를 했습니다. 다행히 조금의 불편함 만으로 일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그 과정이 너무나 속상했고 다른 수사님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시간이 지나서는 그 상황을 돌이켜 볼 때마다 저는 스스로 몇 가지 성찰할 점들을 돌아보곤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준비하는 기간 동안 내 마음이 어디에 자리하고 있었나” 하는 것입니다.



그 준비를 하는 동안 제 마음이 중심을 잡고 있었던 곳이 하느님이 아니었음을 나중에서야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커지는 이 인식은, 오늘까지도 저의 삶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들 중 하나로 서 있습니다. ‘내 마음은 어디에 있었는가? 내 마음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고 있었나?’ 라는 인식.

제가 어릴적 들었던 오늘 복음에 대한 대부분의 강론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삶을 활동적 삶과 관상적 삶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고 예수님께서는 후자의 삶을 더 의미있게 여기고 좋아하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은 단편적인 이해일 수 있어 무언가 아쉽게 느껴집니다. 사실 이 이야기의 보다 더 핵심적인 초점은 “이들의 마음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 이들의 마음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고 있는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마르타를 도와주지 않은 상황을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여러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다소 이기적이고 배려 없는 성향이었다거나, 마르타가 워낙 드센 성향이었다거나, 둘이 사이가 안 좋았다거나 하는 상상들 말입니다. 어쩌면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 중요한 점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의 성향이나 관계가 어쨌든간에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의 마음은 예수님에게 자리하고 있고, 마르타의 마음은 다른 주변의 것들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탓에 심지어 마르타는 예수님더러 뭐 좀 하시라고 이야기하며 예수님의 마음마저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에게 마음을 두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는 삶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거나 또는 내가 수퍼맨 처럼 되는 변화를 준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삶은 며칠 전 복음말씀처럼 무거운 짐을 진 채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에서 안식을 얻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 안식 안에서 우리 짐은 자연스레 가벼워 집니다. 수련소에서의 저의 노력이나 오늘 복음에서의 마르타의 수고가 참되게 빛을 발하는 때는,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에게 자리하고 있는 때라는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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