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낙서하기]
2023.11.17 이래 저래 심장이 매우 피곤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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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심장이 매우 피곤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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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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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는 만 삼천원이라는 표시가 떴다. 나는 사람들이 제일 붐비던 지하 식품 코너에서 집어 온 삼결살 뭉치의 포장에 붙어 있는 테그를 다시 확인했다. 분명 26,000 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만 육천원. 계산대에서 연신 바코드 리더기를 움직이고 있는 마트 직원에게 미안했지만 우리는 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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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거 이만 육천원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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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직원은 그날 수없이 대답했었을 지도 모르는 말을 마치 처음 하는 것 처럼 우리에게 친절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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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이거 50 퍼센트 할인하는 상품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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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나의 가슴은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뛰는 가슴은 순식간에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다는 코너 직원의 말을 믿지 않았던 나를 책망하며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 집었던 대로 세 개를 가져와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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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장에게 맞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옆에 있던 학생수사님에게 천천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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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쓱데이의 첫 날이니 첫날부터 제품이 소진 되는 일은 없을 꺼예요. 내일 되면 또 분명히 가득 차 있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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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주차장으로 올라가 물건들을 박스에 포장할 즈음에야 나는 내 심장이 뛰는 이유가 아쉬움만이 아닌 것을 발견했다. 눈 앞 벽에 붙은 전단지는 아까 무심코 지나갔던 우리가 섭섭했던 듯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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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겐다즈 1 + 1 , 브랜드 가격 상관 없는 봉지라면 전품목 3개 골라담아 9,900원, 한우 양념 불고기 600g 두개 이상 구매시 19,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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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내 심장은 올해 쓱데이 행사가 말뿐이 아닌, 블랙 프라이데이의 정신에 충실한 행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심장은 아까부터 이미 새로운 희망으로 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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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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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6시간 후 우리는 다시 마트로 왔고, 몇달 치 장을 한 번에 봤고, 다시 마트 계산 대의 그 화면 앞에 섰다. 그리고 이제 내 심장은 무수한 1 + 1 의 화면 앞에서 다시 마구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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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래저래 심장이 매우 피곤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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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낙서하기 #맙소사인삶 #묵상글만쓰지말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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