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낙서하기/맙소사인삶

20240110 [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다.] (이 문장은 스가 아스코의 글에서)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4. 1. 10. 21:16

20240110 [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다. ]

 


“영상통화 되시나요?”

저녁 8시. 이제 꽤 모인 듯, 성이에게서 톡이 왔다.

경기가 풀리며 나는 오랜 만에 회사에서 받은 대졸 신입사원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아는 후배의 친형, 나이가 어리지만 선배, 동기, 그리고 내 뒤이 이어 입사한 동생들을 만났고, 젊고 푸르렀던 우리는 회사에서도 기숙사에서도 술집에서도 게임방에서도 함께였다. 웃고, 울고, 싸우고, 격려하고, 아파하고, 행복해하며 찬란하고 고달픈 신입사원의 시간을 함께 했다.

추억이 많다. 어느날 영어 이야기를 하다가 영어 공부가 필요한 동생들을 위해 영어 스터디를 만들었다. 우리는 스터디를 하기 위해 새벽에 1시간 일찍 출근했다. 스터디 강의 준비는 내 잔업 후의 잔업이었다. 스터디가 있는 날이면 새벽 입김을 뿜으여 내 첫 차인 중고 엑센트에 다섯명 여섯명이 구겨 타고 기숙사를 나서곤 했다. 주말에는 시커먼 남자 어른 열 명이서 김밥이랑 사이다를 사들고 공원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낭만이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우리끼리 웃었다. 매일 퇴근이 늦었던 나는 자주 약속에 함께 못하고, 먼저 퇴근하며 빨리 나오라고 하는 동생들의 눈총을 받곤했다. 그런 날은 세 배로 퇴근하고 싶었다.

그리고 회사를 떠난 지 벌써 14년이다.

몇일 전 오랜 만에 연말 인사를 나누던 성이가 수요일 모임을 한다고 했다. 강남이란다. 보고싶지만, 멀다. 함께 모였을 때 통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방금 성이에게서 톡이 왔다.

핸드폰 창 너머로 보였다. 14년의 흔적이 새겨진 얼굴도 보이고, 14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추억이 보이고, 14년동안 쌓인 그리움도 보였다.

“다들 만나면 형 얘기만 해요.”

그래? 하하하. 그래, 그 말도 고맙다. 소리치며 웃는 눈들이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뭔가 마음 한 켠이 아린다. 그래 이건 벌이다.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다. 그래 나도 보고싶다. 많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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