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0 [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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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통화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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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이제 꽤 모인 듯, 성이에게서 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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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풀리며 나는 오랜 만에 회사에서 받은 대졸 신입사원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아는 후배의 친형, 나이가 어리지만 선배, 동기, 그리고 내 뒤이 이어 입사한 동생들을 만났고, 젊고 푸르렀던 우리는 회사에서도 기숙사에서도 술집에서도 게임방에서도 함께였다. 웃고, 울고, 싸우고, 격려하고, 아파하고, 행복해하며 찬란하고 고달픈 신입사원의 시간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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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많다. 어느날 영어 이야기를 하다가 영어 공부가 필요한 동생들을 위해 영어 스터디를 만들었다. 우리는 스터디를 하기 위해 새벽에 1시간 일찍 출근했다. 스터디 강의 준비는 내 잔업 후의 잔업이었다. 스터디가 있는 날이면 새벽 입김을 뿜으여 내 첫 차인 중고 엑센트에 다섯명 여섯명이 구겨 타고 기숙사를 나서곤 했다. 주말에는 시커먼 남자 어른 열 명이서 김밥이랑 사이다를 사들고 공원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낭만이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우리끼리 웃었다. 매일 퇴근이 늦었던 나는 자주 약속에 함께 못하고, 먼저 퇴근하며 빨리 나오라고 하는 동생들의 눈총을 받곤했다. 그런 날은 세 배로 퇴근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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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회사를 떠난 지 벌써 1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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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오랜 만에 연말 인사를 나누던 성이가 수요일 모임을 한다고 했다. 강남이란다. 보고싶지만, 멀다. 함께 모였을 때 통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방금 성이에게서 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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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창 너머로 보였다. 14년의 흔적이 새겨진 얼굴도 보이고, 14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추억이 보이고, 14년동안 쌓인 그리움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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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만나면 형 얘기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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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하하. 그래, 그 말도 고맙다. 소리치며 웃는 눈들이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뭔가 마음 한 켠이 아린다. 그래 이건 벌이다. 우리는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다. 그래 나도 보고싶다. 많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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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낙서하기 #맙소사인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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