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6⠀[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구에게도, 또 그 누구에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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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그냥 나갔다 오실 때 1회용품 사와서 쓰시는게 나을 겁니다. 남자분들끼리 설거지 하기도 힘들꺼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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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 주인의 말은 매우 친절했다. ‘네’ 라고 하지 않으면 마치 내가 나쁜사람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 정성을 가득 담은 말이었다. 숙소의 주방 찬장을 열자 갖가지 크기와 용도의 그릇들이 한 사람이 쓸 법한 분량으로 가지런히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놓여진 모양새나 크기의 조합이 마치 전시장에 전시라도 된 듯 인상적이었다. 정성은 여기에서도 묻어났다. 그래서 이 그릇들이 잘 쓰여지지 않길 주인장은 바랬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는 남자만 세 명. 겉으로 보기에 설거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지도 모른다. 매일 매끼니마다 하는 우린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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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었고 우리는 바베큐를 위해 장을 보러갔다. 고기와 야채와 소금을 사고, 참기름과 고추와 막장을 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장의 말이 떠올라 1회용 접시와 젓가락을 살까 하고 수사님들에게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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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주방에 그릇이랑 젓가락이랑 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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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해주는 수사님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리고 지구에게는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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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지구야, 내가 우리 수사님들 힘들까봐 잠시 너를 잊었었다. 너는 제 때 말을 해 주지 않으니 항상 손해를 보는구나. 그래도 다행히 우리 수사님들이 네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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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려의 마음과 친절과 정성을 담은 말로 나도 모르게 또 지구에게 폭력을 쓸 뻔 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로 그렇게 내가 폭력을 쓰는 것은 지구에게 뿐만이 아니었다. 미안하다 가족들, 형제들, 친구들 그리고 세상아. 정신 바짝 차리고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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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인삶 #놀이터에서낙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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