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마태복음

20231207 대림 1주 성 암브로시오 주교학자 기념일 묵상강론 마태 7,21.24 - 27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3. 12. 7. 22:06

[이러다 기도 부탁하러 오시는 발걸음들이 끊기겠습니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가끔 학생대표 폰으로부터 이런 톡이 오는 때가 있습니다. 학생 수사님들 중 누군가가 무언가를 깨뜨렸거나, 일을 잘 못했거나, 귀가 시간을 놓쳐 차가 끊겼거나 하는 일들이 있을 때면 이렇게 시작하는 톡이 옵니다..

드물지만 신학교 시험과 관련해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고 나서 D나 F의 성적이 나오면, 보통 재시험이라는 통보가 옵니다. 과락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죠. 과락을 하면 골치가 아파집니다. 다음 해에 한 학년 아래 후배들과 수업을 같이 들어야 하며, 그 한 사람 때문에 두 개 학년의 시간표가 전부 바뀌게 됩니다. 여러 모로 민폐입니다. 더구나 소속 본당 주임신부님의 질책도, 신학교 선배나 동기들의 웃는 눈도 괴롭습니다. 그래서 재시험은 희망이자 절망이기도 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재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정규시험이 끝난 후 대략 한 주 간의 이 준비기간에는 무얼 먹을 때에도 잠을 청할 때에도 심장이 오그라들어 토할 것 같은 긴장감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떨어지면 내년 삶이 통채로 달라지는 것이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오늘 오고야 말았습다. 그 드물게 오는 톡이 . 게다가 이번은 더 애잔합니다. 재시험으로 공지된 날은, 나와 학생수사님들이 오랫동안 계획하고 준비해 온 이별여행 일정의 한 가운데 날이었습니다. 과락까지 생각할 것도 없이 이 재시험 만으로도 우리 신학원의 겨울 방학 일정은 완전히 틀어진 것입니다. 예약한 것들의 취소 수수료를 따질 것 까지야 없지만, 두 수사님이 수련소로 가기 전 우리들 만의 이별여행을 어쩌면 영원히 가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재시험 통보를 받은 수사님은 오늘부터 벌써부터 죽을 맛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양 간단히 답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와중에도 우리에게는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내년 부터 죽을 때 까지 매년 겨울이 되면 우리가 함께 실컷 웃을 일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겁니다. 실은 저도 1학년 2학기 때 라틴어 재시험을 쳤었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오면 말해 줄 참입니다.

하.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반석위에 세운 집처럼 튼튼히 세운 여행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하느님 시간 안에서 우리의 반석은 모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의 계획과 노력이 정말 반석이 되게 하는 것은 역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오늘부터 우리 수사님이 재시험을 잘 칠 수 있도록 더 기도해야 겠습니다.

“하느님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할께요.”

나도 오늘 하느님께 드문 톡을 드립니다. 근데 여태 보낸 톡은 아직 1인 모양입니다. 분명 우리 수사님 기말고사 잘 치도록 기도 드렸는데. 이러다가 제게 기도부탁하는 발걸음들이 끊기겠습니다.


20231207 대림 1주 성 암브로시오 주교학자 기념일 묵상강론
마태 7,21.24 - 27 [이러다 기도 부탁하러 오시는 발걸음들이 끊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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