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요한복음

20240409 부활 2주간 수요일 묵상강론 요한 3,7ㄱ.8-15 [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4. 4. 9. 17:25

 

"기상청에서 야유회를 잡은 날은 비가 온다."

 

이런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하도 기상예보가 맞지 않아서 하는 이야기이죠. 수많은 날씨 박사들이 열과 성을 다해 이뤄놓은 업적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여전히 우리 인간의 능력은 많은 한계 안에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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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것을 인간의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기계의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 헷갈리는 기사를 얼마 전 보게 되었습니다.

 

"기상예보 AI가 전통적인 기상예보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날씨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고안한 기상예측 방정식에 기후 관련 수치를 대입해서 해답을 얻는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지난 AI는 40년 간의 날씨패턴을 학습해 1분도 안되어 10일 치 기상을 예측해 냅니다."

 

기사에 따르면 AI를 사용한 기상예보는 기존보다 10만 배 빨리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에너지도 수 천배 절약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고안한 방식보다 더 정확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결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헷갈렸습니다. 이것을 인간의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기계의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우리는 2024년에 이르러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훨씬 더 신속하고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이죠.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 동안 이 뉴스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에서 태어난 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도 과거보다 더 신속하고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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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세대가 지나갈수록 한 걸음 한 걸음 진보해 가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성은 이 세대가 오히려 옛 세대 어른들보다 못하다고들 합니다. 많은 분들이 영성에 대한 고전들이 여전히 최고라고 하며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성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과학의 발전이 영성의 발전을 잠식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과거의 영성이 무지에서 비롯된 허상이기 때문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에서는 점점 더 '납득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의 세대도 어느 정도 그러하고 저의 다음 세대는 더 그러하다고 합니다. 과거 회사 동료들에게서도 또 수도회 안에서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세상 일을 말해도 믿지 않는데 하늘 일을 어떻게 믿을 것이냐'라며 믿으라고 하시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AI와 같은 납득이 너무나 쉽게 되는 과학들이 더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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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이 쉽게 납득이 안 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 아이들에게 어떻게 어떻게 믿음에 대해 안내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성은 세대를 지나며 어떻게 진보해 갈 수 있는 것일까도 고민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영원한 생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의 저에게도 그랬듯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으며 매력이 없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하시지만, 지금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매력적이지 않은 시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더욱더 어려워지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OpenAI의 ChatGPT는 뭐라고 답할지 이 글 다 쓰고 나서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겠습니다.

 

 

 

 

 

 

 

 

 

 

 

 

 

 

 

 

 

 

 

 

 

 

 

 

 

 

20240409 부활 2주간 수요일 묵상강론 요한 3,7ㄱ. 8-15 [바람은 어디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