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낙서하기/맙소사인삶

얼마전 기도를 부탁드렸던 필리핀 가족의 어려움에 대한 결과를 나누려고 합니다.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4. 7. 19. 23:13

지난 6월에 기도를 부탁한다며 올렸던 글에 대한 결과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글을 보니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먼저 기도해 주시고 전화로 이런 저런 조언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래서 부족한 사람도 사제로 살 수 있나 봅니다. 사제 주변에는 하느님께서 많은 좋은 분들을 심어주십니다.

지난 글 이후 필리핀 가족분들과는 매일 전화와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하며 상황을 함께 만나 나갔습니다. 이후 병원 측과는 원무과와 한 번 병원장이 참석한 또 한 번의 회의가 있었지만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는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병원비는 1억 4천만원까지 늘었습니다. 응급시설이 있는 비행기로 환자를 필리핀 까지 호송하는데 8천만이 드는데, 다행히 딸의 지인을 통해 2천만원까지 할인을 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아는 수녀님을 통해 한국의 필리핀 공동체 동반사제인 알빈신부님을 소개 받았습니다. 연락했더니 다행히 서로 함께 아는 친구들이 한국과 필리핀에 많이 있어서 금방 친해졌습니다. 얼마 후 명동성당에서 함께 만나 저녁을 사드리며 필리핀 가족과 신부님을 소개시켜 드렸습니다. 크진 않지만 조금 모았던 돈을 급한데 쓰라고 용돈도 드렸습니다. 그렇게 방법을 찾으며 지내던 어느 날 어느 성지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강론 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개인 후원을 사양하는데도 굳이 돕고 싶다며 두 분이 도와주셨습니다. 나중에 보니 한 분이 100만원, 또 한 분이 20만원이나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사관에서 어떤 에이전시에서 이 가족이 선정이 되었다며 연락이 왔다고 했습니다. 최대 1억까지 지원가능한데 일부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필리핀의 주교님과 서울대교구 주교님 사이 연락이 되어 서울교구에서 도와주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또 병원에서도 일정부분 할인을 해주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서울교구에서는 가족들이 필리핀으로 돌아갈 때까지 몇일 동안 성모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주었고,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모든 비용과 가족들의 비행기편까지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정말 제가 부탁드린대로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신 대로 큰 곳들이 움직여 주었습니다.

출발 전날 마지막 통화를 하며 병원의 지인들과 필리핀 가족 분들에게 친구들의 작은 선물이 있다고 하며 지원해주신 120만원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은 한국과 필리핀에서의 또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집에 잘 도착했고, 응급실에 있던 어머니 분도 곧 일반실로 옮길 것 같다는 연락이 얼마 전 왔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지 또 앞으로 얼마나 지금의 시간들을 사랑의 시간들로 기억하고 살아갈 지 생각하니 저 역시 감사와 사랑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식간에 일이 잘 풀려가니 감사함과 함께 저의 마음 다른 구석에서는 조금 복잡한 감정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묵상 중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무력감이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용을 써도 도저히 해결될 길이 안보였는데, 큰 손들이 조금씩 움직이니 금방 해결되어 버리는 것을 보니 허탈하기도 하고 무력감도 느껴졌던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실망감과 함께 발견되는 저의 공명심이었습니다. 이리저리 애 쓰는 중에 제 마음에는 이런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깊이 있었던 겁니다. ‘와~ 리차드 신부가 1억이 넘는 저 일을 저렇게 잘 해결해 냈단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일이 해결이 되니, 그 공이 다 대사관과 주교님에게 넘어 가버린 것 같고, 이름을 날리고 인정받을 기회를 잃어버려 실망스럽고 아쉬운 마음이 있었던 겁니다.

아직 나에게 이런 마음이 크구나 발견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저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 졌습니다. 또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이속을 챙기는 듯 보일 때 비난하는 일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100% 다 선한 마음으로만 일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기도해 주신 여러분께도 이런 묵상의 선물이 전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좋은 분들이니 조금 더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세요. 그리고 주변에 좀 이기적인 듯 보이는 사람이 있어도 조금 더 너그러워지세요. 그리고 자신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지세요. 우린 모두 조금씩 다 그러니까요.

계속 같이 기도하며 신앙의 길을 걸어갑시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