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루카복음

20250601 주님승천대축일 묵상강론 루카 24,46-53 [나의 마음도 너의 마음도 모두 축복해]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5. 6. 1. 15:30

[나의 마음도 너의 마음도 모두 축복해]
20250601 주님승천대축일 묵상강론 루카 24,46-53


저는 자주 ‘내 삶은 혹시 고통 총량 보존의 법칙을 가진 건 아닌가?’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마음에 고통을 주던 어떤 일이 해결되고 나서 이제 마음에 자유를 좀 얻었다 싶으면 어느새 저의 마음은 또 다른 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고통받을 일을 찾아서 다니는 건 아닌가 무서워질 때도 있을 지경입니다. 뽀얀 봄 볕 아래 반짝이는 초록 벤치에 앉아 따뜻하게 숨을 쉬는 나른한 오후. 그런 안락하고 자유로운 마음이 되어본 게 언제였던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감실 붉은 등 어스름한 성전 안에서 거룩함에 비추어지는 제 삶에 대한 성찰과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으로는 무언가 좀 아쉽습니다. 바깥 봄날의 자유와 안 거룩함의 감사 둘 모두를 제 마음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참 고약하게 탐욕스럽습니다.

요즘 저는 묵상 중에 “너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음성을 자주 듣습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 그런지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려 그런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주 오랜만에 ‘내 마음이 있는 곳’을 묵상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처음 그랬던 건 군 생활 2년 동안이었습니다. 입대를 앞두고 제가 정했던 2년 동안 삶의 주제였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소중한 열매들을 얻었었습니다. 수도원 입회도 그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마음이라는 건 사춘기 아이 같습니다. 어디론가 자꾸 향하는데 어떻게 시작된 건지 왜 가려는 건지 어떻게 가려는 건지 무얼 하려고 가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기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멈출 수도 없습니다. 너무 힘이 셉니다. 어떤 곳은 가면 아픈 줄도 모르고 자꾸만 갑니다. 좀 성숙했나 싶으면 어느새 다시 철부지 아이로 돌아가 있습니다. 잠시 눈을 떼고 있으면 어느새 제풀에 넘어져 울고 있습니다. 그러다 걱정돼서 바라볼라치면 그사이 세상이 떠나갈 듯 웃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안심하려 하면 또 어느 구석에 가 앉아 무릎을 싸고 훌쩍이고 있습니다. 저의 마음이지만 마음이라는 놈,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고통은 이런 마음에 수시로 찾아옵니다.

얼마 전 성모의 밤 전례 중에 동료 신부님이 아름다운 편지를 봉헌했습니다. 그 편지 중에 특별히 이 부분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의 아픔과 세상의 아픔을 품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당신 품 안에서 위로받고 싶습니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례를 끝내고 손님 배웅과 청소 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피곤해 지쳐 앉아 이 문장과 함께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아픔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 오히려 쉽구나. 내 아픔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힘들구나.” 제가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것 같아 좀 슬퍼졌습니다. 수도자로서 죄송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사실인 걸 어쩌겠습니다. 저에게는 제 아픔이 세상의 아픔보다 더 크게 느껴집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어떻게 세상의 아픔을 더 크게 느끼고 자신의 아픔을 지고 죽음을 향했을까 궁금해집니다. 굳건하지 못한 제 마음이 원망스럽습니다.

묵상 중에 저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갑니다. 저를 흔들고 고통을 주고 무너지게 하는 무엇을 만나면 저는 항상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봅니다. 나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나? 그래서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나? 그리고 그 무엇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합니다. 내가 그것을 나를 충족하는 도구로 이용하지 않도록, 내가 그것을 소중한 존재로 존중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축북기도를 바칩니다. 제 눈에는 제가 모자라고 부끄럽지만, 하느님 눈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려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게 꼭 필요한 나만의 유일함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려 합니다. 비교가 아니라 존중입니다. 맞서는 기도가 아니라 축복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저는 제 마음을 위해 축복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 고통을 주는 것들을 위해서도 축복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여러분의 결핍과 여러분의 마음을 위해서도 축복기도를 바칩니다. 오늘 밤쯤이면 예수님 승천 후의 복음 속 제자들처럼 우리도 함께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마음에 축복이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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