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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 ]
20250831 연중 22주 주일 묵상강론 루카 14,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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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도장 이름이 금강무예라고 적혀있는데, 어느 스님이 하시는 곳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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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시절부터 직장생활 할 때에도 시간이 되는 대로 무술도장에 다녔습니다. 그 당시 제가 다니던 도장은 금강무예라고 하는 불교 쪽 명상과 무술을 수련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도장에서 혼자 수련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중년의 남성이 헝겊으로 둘둘 감은 기다란 것을 등에 메고는 도장으로 들어왔습니다. 놀라서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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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도장 이름이 금강무예라고 적혀있는데, 어느 스님이 하시는 곳입니까?"
"아. 사부님은 스님이 아니시고 여기는 중국 불교 중에 밀교 쪽으로 전해져 오는 명상과 무술을 수련하는 곳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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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이라는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쓰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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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장을 둘러보더니 구석에 매달려있는 샌드백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뛰어서 벽을 몇 번 옆으로 걷더니 점프하면서 샌드백을 향해 돌려차기를 하고 바닥에 착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무거운 샌드백이었는데 출렁거리는 크기를 보면 발차기가 얼마나 세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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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사부님이 오셨고 셋이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성은 근처의 범어사라는 절의 청년암이라는 곳에서 오신 분이었습니다. 저의 고향집에서 가까운 부산 범어사 청년암은 중국의 소림사처럼 불교무술을 하는 스님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스님들이 동네 깡패들을 모아놓고 무술을 가르치며 교화한다는 소문도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중년 남성이 등에 멘 것을 풀어서 보여줬는데 날카로운 진검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돌아가고 나서 사부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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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수련을 하다 어느 경지에 이르면 자기 실력을 드러내고 싶고 사람들과 견주어 자신을 평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마음을 같이 수련하지 않으면 저렇게 돌아다니면서 자기를 뽐내고 싸워 이기고 싶어 하는 방랑자가 된다. 너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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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말씀대로 저는 어느 정도 수련을 하고 나서는 어디를 가서도 무술을 한다거나 어느 정도 했다고 잘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가 저의 수준을 아니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나중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심리, 상담, 코칭 등을 공부하면서 이런 마음자세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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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의 능력을 나의 노력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것, 남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자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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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동안 만나는 많은 갈등이나 상처들을 잘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것은 여러 형태의 어려움으로 나타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 나를 더 잘 드러내려다가 오히려 관계가 부자연스러워 지기도 합니다.. 열심히 사랑하고 배려하며 노력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면 그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지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실망과 갈등이 반복되다 보면, 삶이 고단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고, 결국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며 자신을 자책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분들을 동반하다 보면, 그분들 대부분이 정말 존경스럽고 멋지게 사는 분들이라는 점입니다. 전혀 누군가에게 굳이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분들인데, 그렇지 못한 걸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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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도 이런 모습이 잘 나옵니다. 초대받은 자리에서 윗자리에 앉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에게 '나는 이 정도 되는 사람이야'라고 인정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윗자리에 앉아야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남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라는 분들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을 어떤 자리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 다음 잔치에 갈 때 잔치에 누가 오는지 살펴보며 가능하면 자기가 제일 윗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잔치에 가려고 신경을 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도록 애를 쓸 겁니다. 참 슬픈 노력입니다. 어디에 앉든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그 사람 자체는 변함없이 어제와 똑같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이런 분들은 보통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도장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뽐내려는 그 중년 남성처럼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그 눈으로 자기를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보통 우리는 우리를 좋게 보는 사람들보다 안 좋게 보는 사람들에게 신경이 더 쓰이니, 우리는 우리를 안 좋게 보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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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겸손해질 수도 없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필사적인 마음인데 어떻게 그들 앞에서 온유하게 겸손해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 1독서에서 집회서의 말씀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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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주님은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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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다 보면 우리가 놓치고 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어떤 기준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눈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하느님 사랑의 눈길을 보지 못한다면 또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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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독서에서 바오로가 말하는 "여러분이 나아간 곳"에 대해서도 살펴봅시다. 시온산은 보이거나 불이 타오르거나 짙은 어둠이나 폭풍이 일거나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 그곳은 시온산, 하느님의 도성, 천상 예루살렘, 천사들의 축제와 하느님 맏아들들의 모임. 하느님과 의인들의 영과 예수님께서 계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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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독서의 이 대비되는 두 이미지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바오로는 우리가 나아가는 곳이 요란하고 시끄럽고 눈에 드러나는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시온산과 천상 예루살렘에서는 천사들의 축제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의 모임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끄럽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그런 곳이라고 바오로는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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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 드릴게요. 여러분 기억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여러분은 정말 기쁘고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정말 마음 깊이 영혼까지 기뻤던 순간에 말이에요. 저는 축구 시합에서 이겼거나, 바라던 선물을 받았거나, 무언가 성취를 했을 때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곤 합니다. 그런데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진심 어린 마음을 교환했을 때나,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했을 때나, 고통이나 시련 속에서 무언가를 보게 되었을 때 같이, 정말 깊은 영혼의 기쁨을 만나는 때면 달랐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지고, 몸은 깊은 침묵에 머물게 되었었습니다. 무엇을 확인할 필요도, 소리를 질러 표현할 필요도, 누군가에게 말하며 자랑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제가 알고, 상대방이 알고, 또 하느님이 아시니 충분했었습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1독서에서 집회서는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라고 하는데, 온유함은 바로 이런 깊은 기쁨과 행복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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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느님께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내가 나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 때, 우리는 우리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시는 하느님의 눈을 만나게 됩니다. 잔칫집의 첫 자리에 앉느냐 끝자리에 앉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선을 베풀게 되고, 온유한 겸손이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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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부족한 자신을 그대로 사랑해 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을 동시에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함께 노력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한 주간 내가 하느님께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고,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나 스스로 자신을 인정해 주는 시간을 보내봅시다. 고요한 마음과 깊은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과 행복을 만나봅시다.. 그렇게 했다고 요란스레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안에서 온유한 겸손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한 주간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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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강론 #가톨릭 #수도회 #놀이터에서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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