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루카복음

20250727 연중 17주일 묵상강론 루카 11,1-13 [하늘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삶 – 성체성사와 주님의 기도]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5. 7. 26. 22:40

20250727 연중 17주일 묵상강론 루카 11,1-13 [하늘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성체성사와 주님의 기도]

 

 

요즘은 두 끼 드시는 분도 계시고 간헐적 단식 하시면서 드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단식 전문가도 많으시고요. 단식 하시는 분들도 많으셔서 요즘은 수도자들이 점점 자리가 없어지는 같습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 단식을 조금 힘들어합니다. 끼만 먹어도 손이 떨리고 멍해집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것은 저는 수도자고 사제니까 거의 매일 미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떤 사정으로 미사를 하루 드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손이 떨리거나 멍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기도를 오래 못하거나 성사 생활을 충실히 하면 여러가지 아쉬운 변화가 생깁니다. 마음 안에 사랑의 불꽃이 잦아들거나, 인내의 힘이 약해지거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쉽게 미워하게 된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영적으로 살아가려면 우리에게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필요한 양식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혼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요?

 

여러분에게는 배고프다고 하면 항상 무언가 음식을 마련해 주는 분들이 계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수도원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입니다. 배고프면 언제고 나가서 음식을 받을 있습니다. 물론 카드로 결제는 해야 합니다. 2 전까지는 카드가 있어도 없는 강화도 시골에서 지냈었는데 격세지감입니다. 이건 농담이고요.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정하신 조부모와 노인의 날이고도 합니다. 할머니 이야기 잠시 하고자 합니다. 저는 남동생과 할머니와 어릴 때부터 같은 방을 썼습니다. 일반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일반 대학교 1학년 시절에 저는 여러 동아리를 했었는데, 주로 갔던 곳은 UCDC 라는 대학 연합 댄스 동아리였습니다. 6시부터 동아리 방에서 연습을 하고 교문 앞으로 내려가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 드라마가 끝날 무렵 겨우 눈을 떠서 점심으로 해장하고 학교로 가서 동아리 방에서 놀다가 다시 6시에 연습을 하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습니다. 수업은 물론 들어갔고, 시험은 하도 가톨릭 학생회 선배들이 시험만은 쳐야 한다고 해서 과목 이름만 적어내고 오곤 했었습니다. 놀던 시절이었고 집에는 늦은 밤이나 새벽에 들어오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할머니는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들어올 때면 일어나셔서 배고프냐고 물어보곤 하셨습니다. 거의 술을 먹고 날이 대부분이라 라면을 부탁했고, 제가 하겠다고 해도 할머니는 직접 라면을 끓여주셨습니다. 늦은 밤이라도 말이죠. 그때는 몰랐지만 제가 시절 먹었던 것은 그냥 라면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제게 라면들은 무엇과도 바꿀 없고 뭐라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소중한 양식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기도의 구절,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단순히 먹을 것만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안에는 단순하지 않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1) 에피우시오스(ἐπιούσιος): 초자연적인 양식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양식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에피우시오스(ἐπιούσιος)**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번만 쓰인 아주 특별한 단어입니다.

 

에피(epi): 위에, 넘어 (on, upon, above)

우시아(ousia): 본질, 존재 (being, substance)

 

,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오늘 먹을 빵을 청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존재를 넘어서는 특별한 양식, 초자연적인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을 들으면 우리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먹었던 광야의 만나를 떠올릴 있습니다. 우리도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하늘의 양식을 받아먹어만 영적으로 걸어갈 있습니다.

 

2) 생명의 예수님 자신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기도의 의미를 명확히 드러내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것이다. 내가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빵은 성체성사, 예수님의 몸과 피입니다. 그런데 많은 제자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하실 있는가?” 하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열두 제자에게도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성체성사는 제자들을 테스트하는 시험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가 그분과 하나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3) Bread of the Presence 하느님 얼굴의

 

구약에는 다른 힌트가 있습니다. 탈출기 25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성막 안에 항상 두어야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그중에 특별한 빵을 두라고 명하셨습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제사 빵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히브리어로 원문의 의미는하느님 얼굴의 (Bread of the Face of God)”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은 빵을 통해너희는 얼굴을 보아라. 나는 너희와 함께한다.”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역시 우리에게 똑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하겠다.”

 

어린 시절 저희 할머니가 제게 늦은 라면을 끓여주셨듯이 오늘 지금 여기서 영적으로 배고픈 여러분에게 양식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하신 식탁에 이제 여러분을 초대하겠습니다. 

 

조금 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칠 겁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매일 하늘의 양식을 구하라는 예수님의 초대입니다. 그리고 양식은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제대는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마주할 있고 영적으로 배부를 있는 식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으며 광야를 건너갔듯이 우리가 어려운 세상을 있게 헤쳐나갈 있는 양식입니다. 

 

오늘 미사에서 성체를 모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이제 제가 당신 얼굴을 뵈옵고, 당신을 모셨으니 안에서 당신이 사랑으로 살아 쉬시게 하소서. 제가 주님 얼굴을 세상에 전하는 당신 얼굴의 빵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