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루카복음

20250902 연중 22주 화요일 묵상강론 루카 4,31-37 [ 누군가에게 생명과 용기를 주고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게 하는 것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5. 9. 6. 14:01


[ 누군가에게 생명과 용기를 주고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게 하는 것 ]
20250902 연중 22주 화요일 묵상강론 루카 4,31-37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선명한 두 대비를 만납니다.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반응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고향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내몰려 쫓겨나신 후 카파르나움 고을로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고향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반응을 만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심지어 권위가 있다며 놀랍니다.

어떻게 같은 사람을 두고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신기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이 경험해서 알고 있는 사람으로만 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예수님의 모습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겁니다.

저 고향집 가까이에 대학 시절부터 친했던 아는 누나가 하는 치과가 있습니다. 성당 바로 근처입니다. 신학교 부제반 때의 일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 달 정도 그 고향 성당에 머물면서 부제 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미사를 끝내고 진료를 받으러 누나 치과에 갔습니다. 신자가 아닌 누나는 언제나처럼 동생인 저에게 반말로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면서 치료를 했습니다.. 그런데 치료가 끝나고 대기실로 같이 나가는데, 어르신 두 분이 막 일어서서 저에게 허리를 깊이 구부리며 인사를 하시는 겁니다. 부제님하고 인사하시는 걸 보니 본당의 신자 어르신들이셨습니다. 저도 깊이 숙여 인사를 드리는데, 어르신들이 의사 누나와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아이고, 우리는 하늘 같은 부제님한테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데, 선생님은 말도 편하게 하시고 두 분이 되게 친하신가 봐요. 부러워요."

신자가 아닌 친구들이 많은 저에게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신자가 아닌 의사 누나와 그 어르신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광경이었을 겁니다. 모두 저를 모두 좋아해 주시는 분들인데도, 저 하나를 두고 이렇게 다르게 보시기도 합니다. 본인이 경험한 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만나고 이해한 저의 모습이 다른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호감을 가진 어떤 사람의 알지 못하는 다른 모습을 만났을 때 신기해하고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내가 불편해하거나 비호감을 가진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볼 때는 조금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것이 나빠 보이는 모습이라면 더 비난을 하고, 그것이 좋아 보이는 모습이라면 의심을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많은 생각의 제약을 받습니다. 문제는 그런 우리의 눈이 상대방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같은 예수님이었지만 고향에서는 절벽으로 쫓겨나고 바로 다음 마을 가파르나움에서는 존경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어떤 기적도 일으키지 못하시지만, 가파르나움에선 놀라운 일들을 많이 일으키십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만나면,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사람이 아니라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만나려고 노력해 봅시다. 서로 상처를 주었다거나 서로 기쁨을 주었다거나 하는 옛일들과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기억과 감정을 떠나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오늘의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한번 노력해 봅시다. 나의 그 작은 노력이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용기를 주어서 그가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게 할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를 그런 눈으로 보고 계시다는 것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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