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6 연중 1주 금요일 묵상강론 마르 2,1 - 12
[ 슬픔 분노 억울함 무기력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 ]⠀

⠀
“내가 진정 만나기 힘들어하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분들이 아니라
그런 분들로 인해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과 무기력함에 우울함에서
나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이구나.”
⠀
⠀
저에게는 제가 힘들 때 저의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
제가 아무리 못나게 행동하고 이상한 선택을 한다해도
언제나 저를 믿어주고 사랑해준다는 걸 아니까,
때로 저를 비난하거나 때로 오해를 해도
그들이 그렇게 밉거나 섭섭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끔은 속이 상할 때도 있지만 오래 가지 않습니다.
반대로 저도 그들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
저는 수도자고 사제라
누군가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일상입니다.
오히려 저를 믿고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는 분들에게
제가 감사하고 또 송구한 마음입니다.
그분들도 제가 그런 걸로 그분들을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니까 저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일 겁니다.
⠀
문제는 모든 사람들과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
⠀
제가 쉽게 마음을 열고 믿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곁에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불편해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누군가와 일부러 불편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꼭 누군가와는 불편해지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납니다.
왜 그렇게 세상을 만드셨냐고 하느님 탓을 해봐야
왜 비가 오지 않느냐고 가문 하늘에 소리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
그런데 어제 오늘 묵상 중에 하느님께서 저를
이런 생각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
“내가 진정 만나기 힘들어하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분들이 아니라
그런 분들로 인해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과 무기력함과 우울함에서
나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이구나.”
⠀
무엇도 하지 못하고 거기 머물러 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저에게 가장 쉽고 편한 일입니다.
남 탓만 하면 되니까
변화하지 않아도 되니까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비운의 주인공으로 머물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
...
⠀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저는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없이 지내는 중에 제 안에 주님께서 오시는 때면
기도 중에
대화 중에
독서 중에
미사 중에
제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다.
⠀
서글픈 세상과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
힘든 기억과 아픈 상처들이
내 안에 찾아오신 주님께로
모여듭니다.
오늘 복음처럼 지붕을 뚫고 오고
내 마음의 대문 바깥까지 가득 차게 모입니다.
⠀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 저는 다시 불편해 집니다.
⠀
남이 아니라 나를 보라고 양 볼이 잡혀 고개가 돌려집니다.
남이 아니라 내가 변화해야 한다고 귀가 가려워 집니다.
위로받기보다 위로해야 한다고 등 떠밀려 집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주인공의 자리에 초대하라고
목덜미가 잡혀 끌려 내려옵니다.
⠀
그래서 세상 편하게 머물러 있던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과 무기력함에 우울함에서
강제로 끌려나오게 됩니다.
⠀
다시 사랑하라고.
⠀
...
⠀
모두와 깊은 친구가 될 수 없지만
모두를 친구처럼 존중할 수는 있습니다.
사랑은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용서하고 수용하고 화해하는 일보다
먼저 되어야 할 것은
내 집 가득히 주님과 주님의 손님들을 모시고
내가 사랑의 상태에 머무는 일입니다.
⠀
그런데 사실 우리는 매일 이런 일을 겪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때가 언제냐 하면...
그 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 합니다.
⠀
주님 제안에 당신을 모시기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
주님
저와 당신의 찾아옴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희가 당신을 모시고
사랑 안에 머물게 하시고
불편한 삶을 향해 두려워하지 않고
집을 나서게 하소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