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이 속삭여 주시는 마음의 그림소리

20200707 연중 14주 화요일 묵상 - 숯불과 같은 나의 믿음 -

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0. 7. 7. 22:22

 

 

 

 

 

 

 

 

오늘 저는 복음에서 두 가지 큰 사랑의 마음을 만납니다.

하나는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있는 사람들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신 예수님에게서 만납니다. 이 가엾이 여기는 사랑의 마음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귀들인 사람 뿐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동안 만나는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시게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마귀가 들려 말 못하는 이를 예수님께 데려온 사람들에게서 만납니다. 예수님을 시험해 보려고 데려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마귀가 들렸다고 멀리할 법도 한 이 사람을 버려두지 않고 예수님께 데려온 이들의 마음이 참 고맙고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던 이 목자 없이 기가 꺾인 사람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마 우리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눈물을 흘릴 때 콧물까지 같이 흘리는 걸 매우 심하게 우는 기준으로 삼는다고 가정한다면, 사람들 앞에서 그 지경으로 울었던 두 번 중 한번은 수련 2반 끝날 즈음 돌아가신 할머니 시신 앞에서고, 다른 한 번은 법정수련 시작피정에서였습니다.  

제가 성당에 몰래 다닌 이야기나 세례를 받고, 입회, 수련까지의 과정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 분들은 제게 한결같이 제가 믿음이 엄청 깊고, 심지가 굳으며 결단력이 있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엄청난 체험을 했다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닐뿐더러, 정작 저 자신은 수련을 시작할 때까지도 '저의 믿음이 깊지 않고, 하느님 체험을 한 적도 없는 것 같다'라는 것을 매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8일씩 되는 피정도 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저는 정말 머리띠를 동여매고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이번에 하느님 체험을 하지 못하면 수련소 돌아가는 길에 저수지에 몸을 던지리라'는 각오로 피정에 임했었습니다.

피정동안 저는 정해진 기도시간 이외에도 쉬는 시간이든 밤이든 경당에 정좌하고 앉았습니다. 입회 전 대학교를 다니던 때부터 불교명상과 기공수련을 했던 저는 그렇게 수련하는게 익숙했었던데다, 오랜만에 아주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라, 정말 애절한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묵상에 임했었습니다. 두 가지 걸림돌을 만나게 되었는데 하나는 몸에 익어있던 불교식 명상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저의 그 애절한 마음의 열정이었습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불교명상과 가톨릭의 묵상이나 관상과의 차이를 세밀히 구분해 내기에는 저의 수도생활은 너무 짧았고,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맡기고 피정을 하기에는 저의 열정은 너무 미숙하게 컸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7박 8일의 예수마음피정의 마지막 밤에는 침묵을 잠시 해제하고, 다 같이 모여 각자가 그간 했던 하느님과의 여정을 이야기로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명씩 돌아가면서 나눔을 하는데, 다들 예수님을 만나서 과거로 가서 무엇을 하고, 하느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고, 예수님과 어디를 함께 걷거나 날아서 다니고 하는 아름 다운 여정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정말 그렇게 나눌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도 뭔가 기도 중에 그런 것을 한 것도 같지만 망구 제 상상이었던 것 같고, 온 정성을 다해 피정에 임했는데도 마지막 날이 될 때까지 어떤 체험도 못한 것 같아, 정말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인가, 나에게는 성소가 없는가, 나는 해도 안되는 가 라는 생각들 때문에 너무 서러워서 그만 '저는 다른 분들 처럼 그렇게 나눌 이야기가 없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저도 모르게 눈물 콧물 흘리면서 한참을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습니다. 

 

지금 떠올려 보면 그때 저는 영락 없는, 목자 없이 기가 꺾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바로 그 밤이 지난 새벽에 저에게 뭔가 해 주셨습니다. 이대로 갈 수 없다는 저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가를 가엾이 여긴 하느님께서 해 주신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다음날 새벽 즈음에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상태에서 저는 하나의 이미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전날 밤까지의 무겁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가벼워지고 밝아진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면서 저도 거짓말 같은데, 그 아침에 그랬었습니다. 제가 봤던 이미지는 숯불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그윽히 끊이지 않고 타고 있는, 겉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속에서는 엄청 뜨겁게 타고 있는 그런 숯불의 이미지 였습니다. 저의 믿음과 신앙생활이 그러했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앞으로 저의 수도생활도 그러할 것이라고 웬지 모르게 알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부터 숯불은 저의 싱앙뿐만 아니라 수도생활에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그 날 새벽 하느님께서는 그것으로 저를 치유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련을 시작할 용기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마귀들려 말을 못하던 사람이 치유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없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제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즈카르야입니다. 그리고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의 이유가 하느님의 벌이든, 사람의 죄든, 마귀의 짓이든 간에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하느님이시고 그 방법도 하느님의 것이라는 걸 묵상하게 됩니다. 세상 서러웠던 저의 어려움이 뜻밖의 새벽 꿈으로 위로받았듯이, 마귀들린 사람과 병자와 허약한 이를 고쳐주셨던 예수님의 기적은 오늘 저에게도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저는 증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1독서를 묵상하면서 제가 다시 저의 영적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할 일은 계속해서 제 삶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기적을 기억하고 나누며 증언하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것이 또한 제가 수확할 밭의 일꾼을 청하는 것임도 묵상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일으키시는 하느님의 기적을 알아보고 기억하고 또 나누는 하루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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